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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문화 1)

8 min read 1. Projects/1. 2026년 08월 09일자 한국사능력검정시험/3. 고려/필사/고려(문화 1).md

p.156 ~ 159

#유학의 발달과 성리학의 도입

#유학의 발달

#배경

  • 과거제 실시
  • 정치 이념으로 유교 강조

#초기

  • 자주적, 주체적 성격
  • 최승로의 시무 28조(유교 정치사상 확립의 계기 마련)

#중기

  • 문벌 사회의 확립 -> 귀족적, 보수적 성격으로 변화
  • 최충
    • 해동공자
    • 고려의 유학을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발전 시킴
  • 김부식
    • 보수적, 현실 안정 추구
    •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의 "삼국사기" 편찬

#후기

  • 무신 정변 이후 문벌세력의 몰락으로 유학 위축
  • 원 간섭기에 안향에 의해 성리학 수용

#성리학의 도입

#도입

  • 인간의 심성과 우주의 원리 문제를 철학적으로 규명하려는 학문
  • 충렬왕 때 안향이 고려에 처음 소개
#성리학의 전래 역사서
  • 안향은 학교가 날로 쇠퇴함을 근심하여 양부에 의논하기를 "재상의 직무는 인재를 교육하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습니다. (중략)" 하고, (중략) 만년에는 항상 회암 선생(주자)의 초상화를 걸어 놓고 경모하였으므로 드디어 호를 회헌이라 하였다. @고려사

  • 성균관을 다시 짓고 이색을 판개성부사겸 성균관 대사성으로 삼았다. (중략) 이색이 다시 학칙을 정하고 매일 명륜당에 앉아 경을 나누어 수업하고, 강의를 마치면 서로 더불어 논란하여 권태를 잊게 하였다. 이에 학자들이 많이 모여 함께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는 가운데 정주 성리학이 비로소 홍기하게 되었다. @고려사

p.157

#보급

  • 이제현("역옹패설"을 남김)이 만권당에서 원의 학자와 교유
  • 이색이 성균관에서 유학 교육
    • 정몽주, 정도전에게 계승
iWord

만권당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준 충신왕이 원의 연경에 있는 자신의 집에 세운 독서당이에요. 남송 출신 원의 유학자들이 이곳에서 이제현 등 고려의 학자들과 교류하였어요.

p.156

#영향

  • 신진 사대부가 개혁 사상으로 수용 -> 불교의 폐단과 권문세족 비판
  • 일상생활과 관련된 실천적 기능 강조: "소학", "주자가례" 중시
  • 불교의 역할과 비중 축소, 성리학이 사회의 지도 이념으로 등장 -> 성리학을 바탕으로 조선 건국

#교육 기관과 과거제

#관학

  • 중앙: 국자감(유학부, 기술학부로 구성)
    • 유학부: 국자학, 태학, 사문학 교육
      • 과거에서 명경과, 제술과에 응시(7품 이상 관리의 자제가 입학)
    • 기술학부: 율학, 서학, 산학 교육
      • 과거에서 잡과에 응시(8품 이하 관리, 향리, 서님의 자제 등이 입학)
    • 명칭 변경
      1. 국자감
      2. 국학
      3. 성균관
      4. 성균관
      5. 국자감
      6. 성균관
  • 지방: 향교(지방 관리와 서민의 자제 교육)

#고려의 교육 제도 역사서

인종 때에 식목도감에서 학식을 상세히 정하기를, "국자학생은 문, 무관 3품 이상의 아들과 손자 및 훈관 2품으로 현공 이상을 지닌 자의 아들, 아울러 경관 4품으로 3품이상의 훈봉을 지닌 자의 아들로 삼는다. 태학생은 문, 무관 5품 이상의 아들과 손자, 정, 종 3품관의 증손자 및 훈관 3품 이상의 봉작이 있는 자의 아들로 삼는다. 사문학생은 훈관 3품 이상으로서 봉작이 없는 자, 4품으로서 봉작이 있는 자 및 문, 무관 7품 이상의 아들로 삼는다. 3학의 학생은 3각각 300명이며 재학은 나이 순서로 한다."

@고려사

p.156

성종은 인재 양성을 위한 초고 교육 기관으로 개경에 국자감을 설립하였어요. 국자감은 지금의 국립 대학이라 할 수 있는데, 유학부와 기술학부로 나뉘었어요. 유학부에는 7품 이상 관리의 자제가 입학하였고, 기술학부에는 8품 이하의 자제와 향리, 서민의 자제가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고려는 지방에 향교를 세웠는데, 향교는 조선 시대까지 이어졌어요.

p.156

#사학

  • 고려 중기 사학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과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둠
  • 최충의 9재 학당(문헌공도)을 비롯한 사학 12도 융성

#사학 12도 역사서

무릇 사학으로는 문종 때 태사중서령 최충이 후진들을 불러 모아 부지런히 가르치자 선비와 평민의 자제들이 모여들어 그 집 앞의 문과 거리를 가득 채웠다. (중략) 그 후부터는 과거에 응시하는 사람들이면 모두 9재의 명부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으니, 이들을 문헌공도라고 불렀다. (중략) 유신으로서 공도를 세운 자가 11명 있었는데, (중략) 이들을 문헌공도와 함께 세상에서 12도라 불렀다. 그중 문헌공도가 가장 흥성하였다.

@고려사

p.156

#관학 진흥책

  • 사학의 융성으로 위축된 관학 진흥을 위해 노력함
  • 숙종 때 국자감에 서적포를 두어 출판을 담당하게 함
  • 예종 때 국자감에 7재(전문 강좌)와 양현고(장학 재단) 설치
    • 청연각, 보문각 설치
  • 인종 때 경사 6학을 중심으로 정비

#예종의 관학 진흥책 역사서

  • 예종 4년(1109) 7월에 국학에 7재를 두었는데, 주역 전공을 여택(이택), 상서를 대방, 모시를 경덕, 주례를 구인, 대례를 복응, 춘추를 양정, 무학을 강예라 하였다. 대학에서 최민용 등 70명과 무학에서 한자순 등 8명을 시험으로 뽑아 여기(7재)에 나누어 공부하도록 하였다.
  • 예종 14(1119) 7월에 국학에 처음으로 양현고를 두고 인재를 양성하게 하였다.

@고려사

p.156

사학이 나라에서 세운 학교(관학)보다 융성해지자 고려 정부는 관학을 진흥시키고자 국자감에 양현고를 설립하고 7재를 개설하였어요. 양현고는 국자감에 다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마련된 장학 재단이고, 7재는 국자감에 설치된 7개의 전문 강좌입니다. 7재에는 무인 관료 양성을 위해 강예재가 설치되었으나 인종 때 폐지되었어요.

p.156

iWord

양현고 예종이 사학의 융성으로 위축된 관학을 진흥시키고자 국자감(국학)에 설치한 장학 재단이에요.

p.156

#과거제

  • 법적으로 양인 이상이면 응시 가능
  • 실제로는 신분에 따라 응시 과목 구분
    • 문과(제술과, 명경과, 귀족과 고위 향리의 자제가 응시)
    • 잡과(주로 일반 백성이 지원)
    • 승과(승려에게 승계 부여)

#고려의 관리 등용 제도 역사서

제술업, 명경업의 두 업과 의업, 복업, 지리업, 율업, 서업, 산업 (중략) 등의 잡업이 있었는데, 각각 그 업으로 시험을 쳐서 벼슬길에 나아가게 하였다.

@고려사

p.156

광종 때 후주 출신인 쌍기의 건의로 과거 제도가 처음 시행되었어요. 구려 시대의 과거제는 문관을 뽑는 문과(제술과, 명경과), 기술관을 뽑는 잡과, 그리고 승려를 대상으로 하는 승과가 있었으며, 무과는 거의 시행되지 않았어요. 무관은 무예가 뛰어나고 신체 조건이 좋은 사람을 골라 간단한 시험을 통해 선발하였습니다. 한편, 과거 합격자인 문생은 과거를 주관하는 고시관인 죄주(지공거)를 스승처럼 따랐어요. 그리고 과거 외에도 5품 이상 관리의 자손은 음서를 통해 관직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p.156

#역사서의 편찬

#초기

  • 고려 왕조 실록
  • "구사국사", "7대실록", "고금록" -> 현재 전하지 않음

#중기

  • "삼국사기"(김부식)
    • 현존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
    • 신라 계승 의식 반영
    •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
    • 기전체로 서술
iWord

기전체 본가(제왕), 열전(인물), 지(주제), 표(연표) 등으로 구성된 역사 서술 방식으로,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대 왕조에서 정사를 편찬할 때 사용하였어요. 본기의 '기', 열전의 '전'을 따서 기전체라고 해요.

p.157

iWord

편년체 역사 기록을 연, 월, 일 순으로 정리하는 편찬 체제예요. 편년체로 서술된 대표적인 역사서로는 "조선왕조실록"을 들 수 있어요.

p.157

#삼국사기 역사서

성상 폐하께서는 "오늘날의 학자들이 중국의 경전과 역사서에는 능통하나, 우리 역사는 잘 알지 못하니 매우 개탄할 노릇이다. (중략) 중국 역사서에 삼국의 기록이 있으나 자세하지 않고, 예부터 전해 오던 고기의 내용은 빠진 것이 많아 후대에 교훈을 주기 어렵다. 이에 후대에 남겨 줄 역사서를 만들어야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삼국사기

p.157

고려 인종 때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는 현존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예요. "삼국사기"는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에 따라 기전체로 쓰였고, 고려가 통일 신라를 계승한다고 보았습니다.

p.157

#후기

#특징

  • 자주 의식을 바탕으로 전통 문화를 바르게 이해하려는 경향 대두

#무신 집권기

  • "동명왕편"(이규보)
    • "동국이상국집"에 수록
    • 동명왕에 관한 장편 서사시
    • 고구려 계승 의식 반영
  • "해동고승전"(각훈): 명망 높은 승려들의 전기 기록
i인물

이규보 이규보는 문집으로 "동국이상국집"을 남겼는데, 이 책에는 '동명왕편'을 비롯하여 시, 가전체 소설 등 다양한 작품이 실려 있어요. 전집 41권 후집 12권으로 구성되었습니다.

p.157

iWord

해동고승전 승려 각훈이 왕명을 받아 우리나라 역대 고승들의 전기를 정리하여 편찬한 역사서예요. 현재 삼국 시대 승려에 대한 일부 내용만 전해 오고 있어요.

p.157

#동명왕편 역사서

"구삼국사"를 얻어 '동명왕본기'를 보니 그 신이한 사적이 세상에 전하는 것보다 더하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믿지 못해 귀신이나 환상으로만 여겼는데, 세 번 반복하여 읽어서 점점 그 근원에 들어간, 환이 아니고 성이며 귀가 아니고 신이었다. 하물며 동명왕의 일은 변화의 신이한 것으로 여러 사람의 눈을 현혹한 것이 아니라 진실로 나라를 세운 신기한 사적이니 이것을 기술하지 않으면 후인들이 장차 어떻게 볼 것인가? 따라서 시를 지어 기록하여 우리나라가 본래 성인의 나라라는 것을 천하에 알리고자 한다.

@동명왕편

p.157

"동국이상국집"에 실려 있는 '동명왕편'은 이규보가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주몽)의 일대기에 대해 쓴 영웅 서사시로, 고구려 계승 의식이 반영되어 있어요.

p.157

#원 간섭기

  • "삼국유사"(일연): 불교사를 중심으로 고대의 민간 설화, 야사 등 기록
  • "제왕운기"(이승휴): 단군부터 충렬왕까지의 역사를 서사시로 서술
  • 둘 다 단군의 건국 이야기 수록
#삼국유사 역사서

임금이 장차 일어날 때는 부명을 받고 도록을 얻어 반드시 보통 사람과는 다른 점이 있으니, 그런 뒤에야 큰 변화를 타서 기회를 잡아 대업을 이루었다. (중략) 삼국의 시조들이 모두 신이한 일로 탄생하였음이 어찌 괴이하겠는가. 이것이 기이편을 책 첫머리에 실은 까닭이며, 그 뜻도 여기에 있다.

@삼국유사

p.157

"삼국유사"는 원 간섭기에 승려 일연이 지은 역사서예요. 우리 역사의 독자성과 자주성을 강조하여우리 민족의 기원을 고조선으로 보았고, 단군의 건국 이야기가 실려 있어요. 또한, 불교서를 중심으로 고대의 설희와 야사도 기록되어 있어요.

@삼국유사

p.157

#제왕운기 역사서
  • 신 이승휴가 지어서 바칩니다. 예로부터 제왕들이 서로 계승하여 주고받으며 흥하고 망한 일은 세상을 경영하는 군자가 밝게 알지 않아서는 안되는 바입니다.
  • 중국은 반고로부터 금까지이고, 우리나라는 단군으로부터 본조까지 온데, (생략) 흥망성쇠의 같고 다름을 비교하여 중요한 점을 간추려 운을 넣고 읊고 비평의 글을 덧붙였나이다.
  • 요동에 따로 한 천지가 있으니 / 뚜렷이 중국과 구분되어 나누어져 있도다. (중량) 처음 누가 나라를 열고 풍운을 일으켰던가. / 천제의 손자 그 이름하여 단군이라.

@제왕운기

p.157

#말기

  • "사략"(이제현)
    • 성리학적 유교 사관
    • 정통과 대의명분 중시
iWord

사략 고려 말기 성리학이 전래되면서 정통의식과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성리학적 유교 사관이 대두되었는데, 이제현이 쓴 "사략"은 이러한 역사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현재는 "사략"에 실렸던 사론만이 전해져 책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어요.

p.157

#불교의 발달

#초기

#태조

  • 훈요 10조
    • 불교 승상 당부
    • 연등회와 팔관회(불교, 도교, 토속 신앙) 중시

#광종

  • 승과 실시
    • 합격자에게 법계(승계)를 주어 지위 보장
    • 국사, 왕사 제도 정비
  • 개경에 귀법사를 건립하고, 균여(향가 '보현십원가' 저술)를 주지로 삼음
iWord

국사, 왕사 제도 고려는 불교를 중시하여 임금의 스승 역할을 하는 고승을 왕사로 임명하는 왕사 제도를 두었어요. 왕사가 사망하면 대부분 국사의 존호를 추증하였어요.

p.158

#성종

  • 최승로의 시무 28조 수용
    • 연등회, 팔관회 축소 및 폐지(현종 떄 부활)

#중기

#의천(대각국사)

  • 해동 천태종 개창(국정사), "신편제종교장총록"(교장의 총목록) 편찬
  • "교장" 간행(교장도감)
  • 화폐 사용 건의
iWord

교장 의천이 신라 고승의 저술 4백여 권을 비롯하여 송, 요(거란), 일본 등에서 장소(주석서)를 수집하여 간행한 대장경에 대한 연구 해석서예요

p.158

#의천 역사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성인의 가르침을 이야기함은 이를 실천하는 데 있으므로, 다만 입으로만 말할 것이 아니라 실은 몸으로 행동하려는 것이다. (중략) 교리를 배우는 이는 마음을 버리고 외적인 것을 구하는 일이 많고, 참선하는 사람은 밖의 인연을 잊고 내적으로 밝히기를 좋아한다. 이는 다 편벽된 집착이고 양극단에 치우친 것이다.

@대각국사 문집

p.158

의천은 문종의 아들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어요. 송에 유학하고 돌아온 후 그는 교단을 통합하여 불교를 개혁하고자 국청사를 중심으로 해동 천태종을 개창하고 수행 방법으로 교관겸수를 제시하였어요. 또한, 고려와 송, 요, 일본 등 동아시아 각지의 불교 서적을 수집하여 그 목록을 정리한 "신편제종교장총록"을 만들고 개경 홍왕사에 설치된 교정도감에서 "교장"을 간행하였어요.

p.158

iWord

교관겸수 '교'는 부처의 말씀인 경전을 뜻하고, '관'은 실천 수행법을 뜻해요. 즉, 교리 학습과 실천 수행을 함께해야 한다는 사상이에요.

p.158

#후기

#지눌(보조국사)

  • 조계종 정립
  • 수선사 결사(불교계 본연의 자세 확립을 주장하는 새로운 종교 운동)
  • 교리: 정혜쌍수와 돈오점수를 바탕으로 선종 위주의 교종 통합
iWord

정혜쌍수 '정'은 선정, '혜'는 지혜예요. 선정을 통해 깨달음을 얻되 지혜를 얻는 교리 공부를 함께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p.158

iWord

돈오점수 갑자기 돈, 깨달음 오. 즉 문득, 단번에 깨우치는 것을 돈오라고 해요. 깨달은 후에도 점차 점, 닦을 수. 즉, 점진적으로 수행을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이에요.

p.158

#지눌 역사서
  • 정은 본체이고 혜는 작용이다. 작용은 본체를 바탕으로 해서 있게 되므로 혜가 정을 떠나지 않고, 본체는 작용을 가여오게 하므로 정은 혜를 떠나지 않는다. @보조국사 법어
  •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물결치듯이 흘러 다니다가 (생략) 자기의 본성을 보면, 이 성품에는 원래 번뇌가 없다. 번뇌가 없는 지혜의 성품은 스스로 갖추어져 있어서 모든 부처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를 돈오라고 한다. (생략) 비록 본래의 성품이 부처와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지만 오랜 세월의 습기는 곧바로 제거하기 어렵다. 따라서 그 깨달음에 의지해 닦고 점차 익혀 공을 이루고, 오랫동안 성태를 기르면 성을 이루고 된다. 이를 점수라고 한다. @수심결

p.158

지눌은 기존 불교계의 타락과 세속화를 비판하면서 수선사(정혜사, 송광사) 결사를 결성하여 불교계를 개혁하고자 하였으며, 수행 방법으로 정혜쌍수와 돈오점수를 주장하였어요. 지눌의 수선사 결사 이후 조계종이 크게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p.158

#혜심(진각국사)

  • 지눌의 제자
  • 수선사 제2대 사주
  • 유불 일치설을 주장하며 심성의 도야 강조
    • 성리학 수용의 사상적 토대 마련
  • "선문염송집" 편찬
iWord

유불 일치설 혜심은 유교와 불교의 뿌리가 하나라는 이론을 주장하여 불교가 성리학을 포용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였어요.

p.158

#요세

  • 원묘국사, 법화 신앙을 중심으로 백련사 결사 주도

#풍수지리설의 발달

#유행

  • 신라 말 도선이 수용
  • 음양오행 사상에 도침사상이 가미되어 크게 유행
    • 수도의 위치 선정에 관심

#전기

  • 서경 길지설
    • 북진 정책이 이론적 근거,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에 이용됨

#중기 이후

  • 남경 길지설 대두
    • 한양의 남경 승격, 조선의 한양 정도에 영향

#서경 길지설과 남경 길지설 역사서

<태조의 훈요 10조 (서경중시)> 짐은 삼한 산천의 음덕을 받아 왕업을 이루었다. 서경은 수덕이 순조로워 우리나라 지맥의 근본이 되며, 대업을 만대에 전할 땅이므로 마땅히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중간 달에 순행하여 1백 일 이상 머물러 왕실의 안녕을 도모하게 하라. @고려사

<김위제의 남경 천도 주장> 한강의 북쪽에 도읍하면 왕업이 오래 이어질 것이며 온 천하가 조회하러 모여들어 왕족이 크게 번성할 것이니 실로 대명당의 터입니다. @고려사

p.158

길지란 길한 땅, 즉 명당을 의미해요. 서경 길지설은 서경, 즉 평양이 명당이라는 주장이고, 남결 길지설은 남견, 즉 한양이 명당이라는 주장이에요. 고려 초 북진 정책을 추진할 때는 서경이 중시되었지만, 중기 이후 북진 정책이 점차 퇴조하면서 남경 길지설이 대두되었어요.

p.158

#고려 시대의 도교 역사서

  • 태자가 안경공 왕창을 맞이하여 잔치하고 풍악을 올려 밤을 새웠다. 나라 풍속이 도가의 말에 의하여 매번 이날이 되면 반드시 모여 마시고 밤이 새도록 자지 않았다. 이것을 '경신을 지킨다.'라고 한다. @고려사절요
  • 신이 우매한 자질로서 숭고한 지위에 올랐으므로 (생략) 신령한 광명을 크게 나타내고 보배의 눈으로 빨리 보살피사 이 사람으로 하여금 길이 수명을 연장하고, 백성들까지 모두 크게 화합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하소서. @동국이상국집

p.158

고려 시대 도교는 불교와 함께 나라의 안정과 왕실의 번영을 기원하는 국가 종교로서의 역할을 하였어요. 이에 도교 사원을 세우고 하늘에 올리는 제사인 초제를 지내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민간에서는 도교가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기원하는 신앙으로 유행하였어요. 그러나 도교는 일관된 체계를 갖추지 못하여 교단을 형성하지는 못하였습니다.

p.158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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