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환인의 아들 환웅이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이 땅에 내려왔다,. 환웅은 바람, 비, 구름을 다스리는 신들을 데리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신시를 열었다. 이때 곰과 호랑이가 와서 사람이 되기를 빌었다. 곰은 삼칠일(21일) 동안 몸을 삼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호랑이는 그렇지 못하여 사람의 몸을 얻지 못하였다. 여자가 된 곰의 부탁으로 환웅이 잠시 남자로 변하여 웅녀와 결혼하니,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 단군왕검이다. 단군왕검은 자라서 아사달에 도읍하고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삼국유사
p.24
단군의 건국 이야기 중에서 환인의 아들 환웅이 건국하였다는 내용은 선민사상,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내용은 홍익인간의 건국 이념이 반영된 것입니다. 바람, 비, 구름을 다스리는 신(풍백, 우사, 운사)을 거느리고 왔다는 것을 통해 고조선ㄴ이 성립될 무렵 지배 계급이 출현하였고, 농사를 중시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어요. 환웅과 웅녀의 결합은 환웅 부족이 곰을 숭배하는 토착 세력과 연합하여 고저선을 세웠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단군왕검'이라는 칭호를 통해 고조선이 제사장(단군)과 정치적 지배자(왕검)가 분리되지 않은 제정일치 사회였다는 점을 알 수 있어요.
"위략"에 이르기를 "옛 기자의 후예인 조선후는 주나라가 쇠약해지자 연나라가 스스로 왕이 되어 동쪽을 침략하려는 것을 보고, 조선후 역시 스스로 왕을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연나라를 공격하여 주나라를 받들고자 하였다. 조선의 대부 예가 간언하자 곧 그만두었다. (중략)
연나라는 곧 장군 진개를 보내 조선의 서쪽을 공격할여 2천여 리의 땅을 빼앗았다."고 전한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p.24
고조선은 기원전 4~3세기경 중국의 전국 7웅 중 하나인 연과 대립할 정도로 성장하였고, 이 과정에서 연의 공격을 받기로 하였습니다. 기원전 3세기경에는 부왕, 준왕 등 강력한 왕권을 가진 왕이 등장하여 왕위를 세습하였고, 왕 아래 상, 대부, 장군 등의 관직을 두었어요.
대게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죽이고,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갚는다. 도둑질을 한 자는 노비로 삼는다. 용서를 받고자 하는 자는 한 사람마다 50만 전을 내게 한다. 그러나 비록 용서를 받아 보통 백성이 되어도 사람들은 이를 수치스럽게 여겨 혼인을 하고자 해도 짝을 구할 수 없다. 이러해서 백성은 도둑질을 하지 않아 대문을 닫고 사는 일이 없었다. 여자는 모두 정숙하여 음란하고 편벽된 짓을 하지 않았다.
@한서 지리지
p.24
중국 역사서 "한서"에는 고조선의 사회 모습을 보여 주는 8조법(범금 8조) 가운데 3개 조항이 기록되어 있어요. 전해져 내려오는 3개 조항을 통해 고조선이 생명과 노동력을 중시하였고, 사유 재산을 인정한 농경 사회였으며, 계급이 형성되었고 화폐를 사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위만이 망명하여 호복을 하고 동쪽의 패수를 건너 준왕에게 투항하였다. 위만은 서쪽 변경에 거주하도록 해주면, 중국의 망명자를 거두어 고조선의 번병이 되겠다고 준왕을 설득하였다. 준왕은 그를 믿어 박사로 삼고 (중략) 백 리의 땅을 봉해 주어 서쪽 변경을 지키게 하였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연왕 노관이 한을 배반하여 흉노로 들어가자, 만도 망명하였다. 무려 천여 명을 모아 상투를 틀고 오랑캐 복장을 하고서 동쪽으로 도망하여 변경을 지나 패수를 건너 진의 옛 땅인 상하장에 살았다. 점차 진번, 조선인과 옛 연, 제의 망명자를 복속시켜 거느리고 왕이 되었으며, 왕검에 도읍을 정하였다.
@한서 조선전
위만은 군사의 위세와 제물을 얻어 그 주변의 소읍을 침략해 항복시키니, 진번, 임둔이 모두 와서 복속하였고 고조선의 영역은 사방 수천 리가 되었다.
@사기 조선열전
p.25
중국에서 고조선으로 망명한 위만은 준왕의 신임을 받아 서쪽 변경을 수비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이후 세력을 규합하여 준왕을 몰아내고 고조선의 왕이 되었어요(위만 조선). 위만이 집권한 후 고조선은 철기 문화를 본격적으로 수용하였고, 진번과 임둔을 복속시켜 세력을 확장하였습니다. 또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중극의 한과 한반도 남부의 진 사이에서 중계 무역으로 많은 이익을 얻었습니다.
"위략"에 따르면 "처음 우거가 아직 격파되기 이전에 조선상 역계경이 간하였지만, 우거가 듣지 않았다. 이에 역계경은 동쪽 진국으로 갔다. 이때 민으로 따라가 옮긴 자가 2천여 호였다."고 하였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좌장군이 패수 장군을 격파하고 군대를 전진하여 왕검성에 이르렀고 그 성의 서북 방면을 포위하였다. 누선장군도 좌장군의 군대와 만나 성의 남쪽에 주둔하였다. 우거왕이 끝까지 성을 굳게 지키니 수개월이 지나고 성을 함락시킬 수 없었다.
@사기 조선열전
원봉 3년 여름 니계상 참이 사람을 시켜 조선왕 우거왕을 죽이고 항복해 왔다. (중략) 드디어 조선을 평정하고 4군을 삼았다.
@사기 조선열전
p.25
우거왕 때 조선상 역계경은 왕에게 올린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무리를 이끌고 진국으로 남하하였어요. 한편 고조선의 성장에 위기감을 느낀 한 무제는 대규모 군대를 보내 왕검성을 공격하였어요. 한의 침략에 고조선은 1년여간 저항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지배층이 분열되었어요. 이후 한과의 화친을 주장하던 세력들이 우거왕을 암살하였고, 한이 왕검성을 함락하면서 고조선은 멸망하였어요(기원전 108). 한은 고조선의 일부 지역에 낙랑군 등 여러 군현을 설치하였어요. 하지만 임둔군, 진번군, 현도군은 토착민의 저항으로 곧 폐지되었고, 낙랑군은 4세기 고구려 미천왕의 공격을 받아 축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