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씨와 고씨가 망한 다음에 김씨의 신라가 남에 있고, 대씨의 발해가 북에 있으니 이것이 남북국이다. 여기에는 남북국사가 있어야 할 터인데, 고려가 편찬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저 대씨는 어떠한 사람인가. 바로 고구려 사람이다.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땅은 어떤 땅인가. 바로 고구려 땅이다. (중략) 김씨와 대씨가 망한 다음 왕씨가 통합하여 차지하고는 고려라고 하였다. (중략) 고려가 마침내 약소국이 된 것은 발해의 땅을 되찾기 못했기 때문이니, 한탄스럽다.
@유득공, 발해고
p.62
'남북국'은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이 쓴 역사책 "발해고"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예요. 통일 신라와 발해를 '남북국'이라 칭한 것은 발해의 주도 세력이 고구려계 유민이고, 그 영역이 고구려의 땅이므로 발해를 우리 역사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이끌고 지린성 동모산에서 발해를 건국하였어요. 신라 북쪽에 발해가 건국되면서 한반도는 남북국의 형세를 이루게 되었지요. 발해는 9세기 선왕 때 요동, 연해주까지 진출하여 고구려의 옛 영토를 대부분 회복하였어요, 벌해는 넓은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5경 15부 62주의 지방 행정 제도를 정비하였어요.
발해는 정당성의 장관인 대내상을 중심으로국정을 운영하였고, 그 아래 좌사정과 우사정이 6부를 둘로 나누어 관할하는 이원적 통치 체제를 갖추었어요. 그리고 6부의 명칭에 유교 이념(충, 인, 의, 지, 예, 신)을 반영하였어요. 중저대는 관리들의 비리를 감찰한 기구였으며, 문적원은 서적 관리와 주요 문서 작성 등을 담당한 기구였어요. 주자감은 국립 교육 기관으로, 왕족과 귀족을 대상으로 유학 교육을 실시하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