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중앙 정치 조직은 국정을 총괄하는 의정부와 그 아래에서 왕의 명령을 집행하는 6조를 중심으로 편성되었어요. 이 외에 왕명 출납을 맡은 왕의 비서 기관인 송정원, 국가의 중죄인을 다스리는 국왕 직속 사법 기관인 의금부, 언론 기구인 3사, 서울의 행정과 치안을 담당한 한성부, 역사서의 편찬과 보관의 업무를 맡은 춘추관, 최고 교육 기관인 성균관 등의 기구가 있었어요. 또한, 형조 소속의 장례원은 공,사노비 문서의 관리 및 노비 소송을 담당하였습니다.
사헌부: 정치를 논하여 바르게 이끌고, 백관을 규찰하고, 풍속을 바로잡고, 원통하고 억울한 것을 풀어주고, 외람되고 거짓된 것을 금하는 등의 일을 관장한다. (중략) 집의 1명, 장령 2명, 지평 2명, 감찰 24명을 둔다.
사간원: 임금에게 바른말을 하고, 정치의 잘못을 따져 지적하는 일을 맡는다.
홍문관: 궁궐 안의 책을 관리하고, 왕의 물음에 대비하여 경연을 담당한다.
"경국대전"
p.192
3사는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을 가리키며, 언론 기능을 담당하였어요. 3사에는 학문과 덕망이 높은 사람이 주로 임명되었어요. 3사의 관리와 이조 전랑은 청요직에 속하였는데, 3사는 언론을 담당하고 이조 전랑은 인사를 담당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자리는 맑고 청렴한 사람들이 앉아야 한다 하여 청요직(청렴해야 하는 중요한 직책)으로 인식되었어요.
대관은 마땅히 위엄과 명망이 우선되어야 하고 탄핵은 뒤에 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위엄과 명망이 있는 자는 비록 종일토록 말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스스로 두려워 복종할 것이요. 이것이 없는 자는 날마다 수많은 글을 올린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더욱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개 강의한 뜻과 정직한 지조가 본래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못한 채 한갓 탄핵만으로 여러 신하들을 두렵게 하고 안과 밖을 깨끗이 하려 한다면 기강은 떨쳐지지 못하고 원망과 비방이 먼저 일어날까 두렵다. (중략) 천하의 득실과 백성들ㅇ르 이해하고 사직의 모든 일을 간섭하고 일정한 직책에 메이지 않는 것은 홀로 재상만이 행할 수 있으며 간관만이 말할 수 있을 뿐이니, 간관의 지위는 비록 낮지만 직무는 재상과 대등하다.
@삼봉집
p.192
대관은 관리를 감찰하는 사헌분의 관리이고, 간관은 정책에 대한 간쟁을 맡은 사간원의 관리를 말해요. 이들 대관과 간관을 합쳐 대간이라 불렀어요. 대간은 5품 이하의 관리 임명 과정에서 서경권을 행사하였습니다. 조선 건국의 주역이었던 정도전은 "삼봉집"에서 재상 중심의 정치를 주장하면서도 국왕과 재상을 견제할 수 있는 대간의 역할을 강조하였어요.
p.192
iWord
서경권
법률을 제정하거나 관리를 임명할 때 동의하는 권한이에요. 고려 시대에는 모든 관리를 대상으로 서경권을 행사하였으나, 조선 시대에는 5품 이하 관리의 임명에만 적용되었어요.
승정원
왕명의 출납을 담당한 관청으로 정원, 후원, 은대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어요. 도승지, 좌-우승지, 좌-우부승지, 동부승지 등 6명의 승지를 두었습니다. 승정원에서 매일매일 취급한 문서와 사건을 기록한 일지인 "승정원일기"는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어있어요.
관찰사
조선 시대 각 도에 파견되어 지방 통치의 책임을 맡았던 지방관이에요. 대개 종2품 이상의 고위 관리가 임명되었는데, 임기는 360일(1년)이었고, 감사나 도백, 방백으로도 불렸어요. 자기가 관할하고 있는 도의 감찰권, 사법권, 징세권, 군사권 등을 가지고 있었어요. 특히 연 2회 수령의 근무 평가를 시행하여 등급을 정하고 성적이 나쁜 수령을 파직하기도 하였어요.
p.193
iWord
상피제
일정 범위 내의 친족 간에는 같은 관청 또는 관련이 있는 관청에서 근무할 수 없게 하거나, 연고가 있는 관직에서 근무하지 못하게 한 제도예요.
<수령 7사>
도내의 수령에 대한 고과는 "경국대전"에 따라 매해 연말에 실시하며, 다음 칠사에 근거한다.
농상을 성하게 함(농상성)
부역을 고르게 함(부역균)
호구를 늘림(호구증)
소송을 간명하게 함(사송간)
학교를 일으킴(학교흥)
간사함과 교활함을 없앰(간활식)
군정을 닦음(군정수)
p.193
부, 목, 군, 현에 파견된 지방관을 수령이라고 해요. 조선에서는 고려와는 달리 모든 군현에 수령을 파견하였으며, 수령은 국왕의 대리인으로 지방의 행정, 군사, 사법권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들의 임기는 1800(5년)이었고ㅡ 원칙적으로 상피제의 적용을 받았어요. "경국대전"에는 수령이 지방을 통치함에 있어서 힘써야 할 일곱 가지 사항이 실려 있어요.
우리 고향 비옥현은 오랫동안 상주의 속현이었다. (중략) 가끔 급한 일이 있어 상주의 주리가 오면 현리와 현민들을 욕보이고 해독을 끼치는 일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전조(고려) 말기에는 일이 많고 겨를이 없어 현의 세력이 날로 궁핍하였다. 우리 조정에서 그 까닭을 알게 되니 여러 속현과 주 사이가 멀리 떨어진 곳은 모두 감현관(수령)을 한 사람씩 두어 다스리게 한 뒤에야 리와 민이 점점 나아졌다.
"신증동국여지승림"
p.193
조선 시대부터 모든 군현에 수령이 파견되고, 향, 부곡, 소의 특수 행정 구역이 소멸되었어요. 또한, 향리는 세습적 아전으로 신분이 격하되는 등 고려에 비해 중앙 집권 체제가 강화되었어요.
조선 시대에 과거제는 문과, 무과, 잡과가 시행되었으며, 원칙적으로 양인 이상이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서얼과 재가한 여성의 자손, 탐관오리의 아들은 문과에 응시할 수 없었어요. 문과는 초시에서 각 도의 인구 비례로 뽑고, 2차 시험인 복사에서 33명을 선발한 후, 왕 앞에서 시행하는 전시에서 최종 순위를 결정하였어요. 원칙적으로 예비 시험의 성격인 소과에 합격하여야 문과에 응시가 가능하였어요. 소과 합격자는 성균관에 입학하거나 대과인 문과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고, 하급 관리가 될 수도 있었어요. 고려와 달리 조선에서는 무과도 법제화되어 시행되었으며, 문과와 같은 절차를 거쳐 최종적으로 28명의 인원이 선발되었어요. 한편, 기술관을 뽑기 위한 잡과는 해당 관청에서 별도로 실시되었어요.
국가에서는 처음에 각 도 군사들을 모두 진관에 분속시켰다. 이에 반란이 있으면 각 진관이 소속 군사들을 거느리고 정돈하여 주장의 호령을 기다렸다. (중략) 만약 적의 침략으로 진관 하나가 무너지더라도 다음 진관이 군사를 정돈하여 굳게 지킴으로써 도 전체가 무너지는 일은 없었다.
@선조수정실록
p.194
15세기 세조 때 소규모 지역 단위 방어 체제인 진관 체제를 시행하였어요. 진관 체제는 각 도에 한 두개의 병영과 수영을 두고, 그 아래의 주요 요충지에 거진을 두어 지역 방위를 담당하게 한 것이에요. 진관 체제는 대규모의 외침을 막기에는 불리한 방어 체제였어요.
p.194
제승방략 체제
도내의 여러 읍을 순변사, 방어사, 조방장, 도원수와 본도 병사, 수사에게 소속시켰다. 이리하여 위급한 일이 있으면 반드시 멀고 가까운 곳의 군사를 동원하여 빈 들판에 모아 두고, 1천여 리 밖에서 오는 장수를 기다리게 하였다.
@장비록
p.194
진관 체제가 적의 대규모 침략을 막기에 불리하였던 반면, 16세기 명종 때 실시된 제승방략 체제는 유사시에 군사력을 집중시켜 적의 대규모 침략에 대비하려는 도 단위의 방어 체제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