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대성동 고분군과 출토 유물 | 김해 대성동 고분군, 판갑옷, 청동솥
금관가야는 김해를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전기 가야 연맹을 주도하였어요. 김해 대성동 고분군은 김해 시내 중심부에 있는 구릉 지대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는데, 구릉의 정상부에 왕과 왕족의 무덤이 있어요, 대성동 고분군에서는 다량의 토기와 철제 무기 및 갑오스, 그리고 중국, 낙랑, 왜로부터 전해진 것으로 보이는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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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가
가야의 건국 설화에 전해지는 노래 입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가야 지역은 9명의 부족장이 다스리고 있었어요. 어느날 하늘에서 구지봉의 땅을 파면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그렇지 않으면 구워서 먹겠다."라는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라는 말이 들려 왔어요. 부족장과 사람들이 그렇게 하자 하늘에서 여섯 개의 알이 들어 있는 상자가 내려왔고 알에서 가장 먼저 태어난 아이가 김수로왕입니다. 김수로왕은 금관가야를 세우고 왕이 되었으며, 이후 배를 타고 건너온 아유타구의 공주 허황옥과 결혼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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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일본부
왜가 4세기 후반 한반도 남부 지역에 진출하여 백제, 신라, 가야를 지배하고, 특히 가야에는 일본부라는 기관을 두어 6세기 중반까지직접 지배하였다고 하는, 일본에서 제기된 주장이에요. 임나일본부설은 일제 강점기 일본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의도로 제기되었고, 지금은 여러 고증 과정을 통해 학문적으로 모두 극복되었습니다.
대가야(고령)가 내륙 평야의 농업 생산 기술을 바탕으로 금관가야의 선진 기술을 흡수하여 가야 연맹 주도
농업에 유리한 입지 조건, 풍부한 철 산지 보유, 중국 및 왜와 교류
고령 지산동 고분군과 출토 유물 | 고령 지산동 고분군과 무덤, 토제 방울, 철제 갑옷과 투구, 금동관
대가야는 고령을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후기 가야 연맹을 주도하였어요. 산 정상에 자리 잡은 고령 지산동 고분군은 가야 지배층의 무덤이에요. 지산동 고분군에서는 철제 갑옷과 금동관, 다양한 토기들이 출토되었어요.
가야 연맹과 중심 세력의 변화 | 가야 연맹과 중심 세력의 변화
가야는 여러 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진 연맹 국가로, 3세기경 김해의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전기 가야 연맹을 형성하였어요. 그러나 고구려가 신라를 도와 왜를 격토하는 과정에서 가야까지 공격하여 금관가야의 세력이 쇠퇴하면서 전기 가야 연맹은 해제되었어요. 이후 대가야를 중심으로 기 가야 연맹이 형성되었습니다. 가야 연맹은 소국마다 정치적, 경제적 독립성이 강해 중앙 집권적 고대 국가로 성장하지 못한 채, 백제와 신라의 팽창에 시달리다가 금관가야는 신라 법흥왕 때 병합되었고, 대가야는 신라 진흥왕에게 정복되었어요. 이로써 가야 연맹은 멸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