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ond B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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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공부:생존의 피로를 성장의 즐거움으로 전환하라

49 min read 3. Resources/독서 노트/PKM(개인 지식 관리 시스템)/거인의 공부/거인의 공부.md

#1장. 다시, 공부해야 하는 이유

#왜 나의 공부는 나를 성장시키지 못하는가?

정체된 삶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시도하는 것은 바로 '공부'다. 이는 본능적인 생존 반응이다.

p.16

나도 뭔가 답답하고 뭘 해야할지 모르겠을 땐, 잘 읽지도 않던 책을 읽게 되고, 안하던 공부를 하게 된다.

우리는 왜 또다시 자학적인 자기계발의 길로 들어서는 걸까? 게잃르거나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다. 방법을 모르기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무의식 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 가능성을 갉아먹는 두 마리의 유령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유령은 패배주의다. 학창 시절의 성적표가 지적 능력의 영원한 꼬리표하고 믿는 것이다. 학교 공부와 인생 공부는 다르다. 학교 공부가 정해진 답을 찾는 훈련이었다면, 인생 공부는 내 삶의 질문에 스스로 답을 만드는 창조적 과정이다.

두 번째 유령은 연령 한계론이다. 마흔이 넘으면 뇌가 굳어서 공부가 불가능하다는 낡은 통념에 사로잡힌 이들이 많다. 뇌과학은 나이와 학습 능력이 단순 반비례허지 않음을 이미 증명했다. 신경가소성 이론이 밝혀 냈듯이 인가의 뇌는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변화하며, 사용할수록 새로운 신경 회로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오히려 어른의 공부는 더 강력하다.

p.17 ~ 18

첫 번째는 이미 의미가 없다는걸 많이 경험했다. 나는 고졸이지만 일해보니 전공자들도 나보다 못한 경우가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두 번쨰는 내가 아직 마흔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공부는 하면 할수록 더 잘되는 거 같다. 공부는 복리 효과가 있다고들 한다.

"공부에도 근력이 필요합니다."

교육 심지학자 벤저민 블룸(Benjamin Bloom)은 인간의 인지 능력이 '기억-이해-적용-분석-평가-창조'라는 위계 구조를 가진다고 밝혔다.

우리의 공부는 어떠한가. 기억과 이해라는 근력을 제대로 다져 놓지도 않고 분석과 평가도 건너뛴 채 곧 바로 '창조'라는 고난도 기술을 흉내 내려 한다. 당연히 실패 할 수 밖에 없다.

p.18 ~ 19

기억과 이해를 건너 뛰는 이유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이다. 공부할 것은 산더미 처럼 많은데 천천히 음미하며 기억과 이해를 하고 넘어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프로그래밍 공부를 할 때 느꼈다. 앞에서 부터 천천히 기억과 이해를 하면 뒤에가서 훨씬 빠르게 달릴수 있다는걸.

블룸의 공부 이론을 제대로 실천하는 지름길이 있다. 바로 '명시화(Explication)'다. 명시화란 우리 머릿속에만 머물던 막연한 생각과 감각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드러내놓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기록하고, 말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명시화가 기초 근력 중 핵심인 이유는 그것이 생각이라는 무형의 활동을 지식이라는 유형의 결과물로 바꾸는 첫 관문이기 떄문이다.

p.19

여러 PKM 책을 읽어보면 동일하게 말한다. 바로 쓰라는 것이다. 생각에 머물지 않고 글로 썼을 때 비로소 내것이 된다고들 한다. 기록은 단순히 기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것으로 만들기 위한 중요한 과정인거 같다.

<백만장자 시크릿>의 저자 하브 에커(Harv Eker)는 말했다. "생각이 감정을 낳고, 감정이 행동을 낳으며, 행동이 결과를 만든다." 여기서 행동과 결과는 눈에 보이는 명시계의 영역이고, 생각과 감정은 보이지 않는 내면계의 영역이다. 공부란 내면계의 에너지를 명시계의 결과물로 치환하는 작업이다.

p.19

그렇다면 눈으로만 하는 공부는 공부가 아니라는 거구나. 노트에 필기하고 요약하는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공부를 하는 것인가 보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인간이 살아가는 두 가지 방식을 구분했다. 바로 '소유적 양식'과 '존재적 양식'이다

소유적 공부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소유란 본질적으로 내 몸 밖에 있는 대상을 사회적 약속이나 힘을 통해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행위다. 송유적 공부에서 지식은 내 안의 것이 아니라 바깥의 것이다. 책장에 책을 가득 꽂아두고 '아, 나 저 책 샀어, 공부했어'라고 안도하는 마음, 그것이 전형적인 소유적 태도다.

반면 존재적 공부는 나를 바꾼다. 존재적 양식의 인간에게 지식은 소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일부가 되어 나를 변화시키는 생명력 있는 경험이다. 존재(Being)란 말 그대로 그 것이 이미 내가 된 상태, 즉 내 몸의 일부가 된 상태를 뜻한다. 존재적 공부는 지식이 내 안에서 기존의 경험과 융합되고 소화되어 나라는 존재 자체를 바꾼다.

p.20 ~ 21

"책장에 책을 가득 꽂아 두고, '아 나 저책 샀어, 공부 했어'라고 안도하는 마음" 정확히 내가 했던 행동이다. 프로그래밍 관련하여 유명하다는 책들을 모조리 사서 꽂아두고 본 것은 몇 개 되지 않는다. 나는 전형적인 소유적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앞으로는 느리더라도 천천히 느끼며 공부해야겠다. 존재적 공부를 해야할 시기가 온거 같다.

내면의 깊은 울림과 깨달음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내 삶의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려면 한 번의 다른 순환 과정이 필요하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열쇠가 바로 '내재화(Implication)'와 '명시화(Explication)'의 선순환이다.

책을 읽고 감동을 받거나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면 그것은 내재화다.

이것을 바끙로 흘려보내야 새로운 물이 들어오는데, 물을 흘려 보내는 배출구가 바로 명시화다.

존재적 공부가 내면으로의 깊은 여행이라면 명시화는 그 여행에서 얻은 보물을 세상 밖으로 가지고 나오는 귀환의 여정이다. 그리고 외면 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바로 기록이다.

p.22 ~ 23

즉, 책을 읽고 뭔가를 느끼고 깨달았다면 기록을 해야 비로소 진짜 내 것이 된다는 말이다.

#인생의 정반쯤 왔을 때 공부가 더 필요한 이유

나에게 공부는 세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나를 정확하게 들여다보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지 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다. 둘째, 논리적인 사유 체계를 세우는 일이다. 머릿속에 단단한 뼈대가 잡혀야 내공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 셋째, 무엇이든 실행에 옮길 때 거침없이 밀고 나가는 추진력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시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공부'를 했을 때만 얻을 수 있는 결과다.

p.28

공부는 단순히 외우고 시험을 잘 치르는 문제가 아니다. 나를 알아가고, 나한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고, 그걸 실행에 옮길 수 있는 힘이 되어 주는 것이다.

성실함은 미덕이다. 하지만 방향을 잃은 맹목적인 성실함은 서글프다, 스스로 질문하지 않고 관성에 따라 사는 삶을 살 수 밖에 없기 떄문이다.

잠재성을 깨우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하루, 그것은 카뮈의 통찰대로 '아주 천천히 진행되는 정식적 죽음'일지도 모른다.

p.29

죽는다는 건 꼭 육체적 죽음만이 있는건 아닌거 같다. 아무 생각없이 사는 것,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사는 것 또한 또 다른 죽음인거 같다.

그렇다면 이 무기력한 일상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들뢰즈는 우리 안에 숨겨진 힘, 바로 '잠재성'에 주목했다.

들뢰즈가 말한 잠재성은 다르다. 그것은 이미 내 안에 실재하지만 아직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은 '버추얼 상태(Virtuality)'다.

제대로 된 자극만 주면 언제든 튀어 올라 살아 움직이는 '액추얼 상태(Actuality)'가 된다,. 공부가 바로 그 자극이다.

p.29

무기력을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부를 하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본능적인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는 무기력 할 때 오히려 공부가 하고 싶어졌었다.

기계적인 지식과 기능만으로는 더 이상 AI와 경쟁할 수 없다. 지식을 단순히 소비하는 자와 지식을 융합해 나만의 통찰을 만들어내는자의 격차는 빈부 격차보다 더 무섭게 벌어질 것이다.

p.30

프로그래밍 면접 질문을 보다보면 AI보다 본인이 나은점을 말해보라고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마다 생각했던것이 '계산기가 나왔다고 수학자가 사라진 게 아니듯 AI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도구이지 AI 자체 만으로는 아직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였다.' 이처럼 AI의 지식을 통해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AI 시대에 대응할 수 있을 것 같다.

공부처럼 간단하고 쉬운 한자어로 구성된 단어도 드물다. 공부의 한자는 장인 '공'과 아비 '부'로 구성된다. '공은' 장인이 기술을 갈고 닦듯 배움을 몸에 익히는 과정을, '부'는 그렇게 쌓은 내공으로 가정을 이끄는 지아비처럼 성숙한 경지에 이르는 것을 뜻한다. 즉 장인의 치열함으로 지식을 체화하고 지아비의 넉넉함으로 그 지식을 자식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진정한 공부다.

p.32

공부의 뜻을 생각해본적이 없다. 근데 내가 프로그래밍 공부 했을 때 했던 방식이 이런거였던거 같다. 미친듯이 공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며 알려주는 방식이였다. 프로그래밍은 제대로 공부했던 것 같다.

우리 인생도 카테고리화하지 않으면 시간을 흘려 보내며 낭비하게 된다. 공부란 바로 내 삶에 이름표를 달아주고 제자리를 찾아주는 분류의 기술을 익히는 것이다.

p.33

여러 분야를 공부해 놓으면, 필요할 때 입맛에 맞게 조립해서 꺼내 쓸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많은 공부가 필요하고 적절히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내 삶을 다양한 영역으로 나누고 각 영역을 채우기 위해 생각하고 기록하는 것 이것이 내가 말하는 '진짜 공부'의 시작이다

p.34

하나를 깊게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여러 분야를 공부하며 지식을 확장해 나가는 것 또한 중요해 보인다. 그 과정에서 기록은 필수이다.

#역할이 아닌 '존재'에 집중하는 삶을 살기 위한 공부

온전히 '나'로서 사는 삶이 진정한 성장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면, 역할에 갇힌 삶은 타인의 기대를 채워주는 대리전에 불과하다.

p.38

내 삶인데, 남들 입맛대로 사는 것은 너무 아깝다. 하루를 살아도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살아야 비로소 '살았다'라고 할수 있다.

자유는 근육과 같다. 쓰지 않으면 무뎌지고 끝내 퇴화해버리고 만다.

p.39

도둑질도 해본놈이 할줄 알고, 노는 것도 놀아본 놈이 놀줄 아는것이 이런 이치이지 않을까 싶다. 자유도 누려본 사람이 누릴줄 안다.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존재론적 질문이 어렵다면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라는 수행적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좋다. 이 간단한 질문이 나의 자아를 찾는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p.39

이런 질문을 최근에 했는데, 작은 누나가 그랬다. 어디서 봤는데 그냥 사니까 사는거라고 그런 생각을 계속 하면 도달하는 곳은 정신병원일거라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저 질문에 대답을 명확히 할 수 있을때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거 같다는 생각이든다. 어려운 문제인 만큼 많은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하니까. 일단 하나는 찾았다. 프로그래밍이 나는 상당히 재밌고 좋다.

나는 노후 준비에도 순서가 있다고 말한다.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겋은 무엇일까? 바로 '자아 정립'이다

자아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육체로서의 자아, 무의식으로서의 자아, 의식으로서의 자아다. 이 중 의식으로서의 자아 찾기가 가장 중요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며, 판단의 기준은 무엇이며, 어떤 유형의 사람을 좋아하는지'와 같은 질문에 답을 하는 자아다.

그렇다면 이 '의식으로서의자아'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첫쨰는 내 기억의 총체인 '자기 역사 쓰기'를 통해 자신의 삶과 생각 패턴을 파악하고 둘째는 '관계 클러스터 그리기'로 내 삶의 수많은 관계의 의미를 정의해보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건에서 기쁨을 느꼈고, 어떤 순간에 좌절했는지에 관해사건과 그때 느낀 감정을 중심으로 복기해보는 것이 진짜 자기 역사다. 관계 클러스터도 지인들을 그저 나열해 놓은 것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을 종이 위에 배치한 뒤, 누가 나에게 에너지를 주고 누가 빼앗아가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작업이다.

p.41 ~ 42

  • 자기 역사 쓰기
  • 관계 클러스터 그리기

막상 떠오르는 게 딱히 없다. 천천히 생각해보아야겠다.

#공부가 일상의 루틴이 되면 '성장'과 '향유'가 가능해진다.

자아를 찾는다는 것은 단순히 심오한 철학적 질문에 답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역할에 얽매이지 않고, 내 삶의 시간을 온전히 나만의 속도와 밀도로 채워나가는 구체적인 행위다. 우리는 흔히 '성장'을 위해서 공부한다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공부는 우리를 '향유'의 세계로 안내한다.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무엇을 할 떄 행복한지 알게 되고, 삶의 순간순간을 깊이 있게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p.45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자아를 찾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더 많은 것들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흔히 향유를 누리고 갖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향유는 소유와 엄연히 다르다.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는 꽃 한송이로 이 의미를 명쾌하게 구분해 설명했다. 들판에 핀 꽃을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에 젖어들면 '향유'다. 하지만 욕심이 나서 그 꽃을 꺾어 내 손에 쥐면 '소유'디.

이것은 단순한 쾌락과도 구별된다. 쾌락이 감각의 소비라면 향유는 존재의 발견이다.

p.47 ~ 48

있는 그대로를 즐기면 향유, 내 것으로 만들면 소유, 느낀 감정을 소비하면 쾌락

밥먹는 일을 생각해보자. 살기 위해 꾸역꾸역 먹으면 그저 생존이지만, 맛을 음미하며 먹으면 미식이 된다. 이렇게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생존의 행위들도 향유의 태도를 가지면 삶의 기쁨으로 바뀌고, 이 반짝이는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나를 지탱하는 단단한 기둥이 된다. 그러니 향유하라.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향유를 더 깊이 즐기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수다.

몰라서 못 즐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린다.

p.49

아는 것이 많아지면 삶의 해상도가 올라간다고 한다. 바로 이런 의미이지 않나 싶다.

아무리 즐거운 공부라도 깊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독한 '인내의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 이 과정을 지치지 않고 건너려면 몸과 마음이 무기력해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보는 기술이 필요하다.

남들이 좋다는 방법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행위여야 하고,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나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공부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p.52 ~ 53

어떤 것을 했을 때 스트레스가 해소되는지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친구를 만나 카페를 가거나, 노래방을 가거나, 잠을 자거나, 책을 읽거나, 프로그래밍을 한다.

#가장 나다운 삶의 설계와 공부 주제 정하는 법

도대체 나다움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타고난 기질이라는 뿌리 위에 내가 살아온 시간의 무늬와 앞으로 가고 싶은 방향이 더해진 나만의 고유한 지도다.

p.55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그것을 하며 사는 것이 나다움 삶아닐까.

인간이 특별한 이유는 단 하나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 '왜 여기서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질문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의 부속품으로 전략한다.

p.56

평소에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 나로서는 반가운 소리다. 그저 힘들기만 했는데, 필요한 질문을 잘 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타인의 욕망을 흉내 내는 삶이 아니라 내 고유한 색깔로 빛나는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평생 놓지 말아야 할 진짜 공부다.

p.57

이렇게 되기 싫어서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래서 프로그래밍이라는 하나는 찾았다.

내 안에는 이미 훌륭한 데이터가 쌓여 있고, 그 데이터를 해독하는 두 가지 키워드인 설향과 선호가 있기 떄문이다.

성향은 타고난 기질이자 태도다. 이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으로도 파악이 가능하다. 가령 이런 식의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나는 한곳에 진득하게 머무는 정주형인가, 아니면 끊임없이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는 이동형인가? 혼자 사색 할 때 에너지가 차오르는가, 아니면 사람들과 어울릴 때 생기가 도는가? 더 정확한 것은 내가 살아온 지난 시간들이다.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끌렸던 순간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했던 기억들이 바로 내 성향의 증거다

성향이 타고난 그릇이라면 선호는 그 안에 담고 싶은 구체적인 내용물이다. 지금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릴 적 막연히 동경했던 일, 바쁜 일상에 치여 미뤄두었던 소망들, 앞서 그려보았던 인생 지도 속의 꿈들이 모두 선호에 해당한다.

p58

내 성향

  • 정주형
  • 사색 내 선호
  • 프로그래밍
  • 책읽기

나는 개발자가 적성에 맞는거 같다. 공부할 때도 일할 때도 시간 가는줄 모르고 하고 일한다는 느낌보다는 게임한다는 느낌이 더 들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파고 들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너무 재밌고 성향에 맞다.

#1장. 요약

공부를 해도 잘 안됐던 이유는 두 가지이다.

  • 패배주의
  • 연령 한계론

공부에는 근력이 필요하다. 작심삼일을 하는 이유는 이 근력이 없어서이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기억과 이해라는 근력을 키워야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수 있다.

소유적 공부: 책장에 책을 사서 꽂아두고 나 저거 공부했었지 하는 것 존재적 공부: 책을 읽고 내 것으로 만들어 내 몸과 하나가 되는 것

존재공 공부가 내면으로의 여행이라면, 기록은 외면으로 나아가는 방법이다.

공부의 세 가지 의미

  • 나를 정확하게 들여다보는 힘을 기르는 과정
  • 논리적인 사유 체계를 세우는 일
  • 무엇이든 실행에 옮길 때 거침없이 밀고 나가는 추진력

잠재성을 깨우는 방법은 공부이다.

AI 시대에 살아남는 방법은 지식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융합하고 잘 활용하는 것이다.

자아 정립을 해야핸다. 나는 누구인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질문을 하고 이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 자기 역사 쓰기
  • 관게 클러스터 그리기

향유를 즐기기 위해서 공부는 필수이다.

나다움: 타고난 기질이라는 뿌리 위에 내가 살아온 시간의 무늬와 앞으로 가고 싶은 방향이 더해진 나만의 고유한 지도다.

  • 성향: 타고난 기질
  • 선호: 성향 안에 담고 싶은 구체적인 물질

#2장. 생각과 감정을 배우다

#생각은 삶을 어떻게 이끌어가는가

생각 없이 사는 삶이 가능할까?

우리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저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며 하루를 흘려보낼 때가 훨씬 많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인가의 뇌를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라고 부른다,.

우리의 뇌는 본능적으로 생각이라는 고된 노동을 피하려 든다. 낯선 문제 앞에서 고민의 칼날을 세우기보다는 익숙한 고정관념이나 과거의 경험, 혹은 남들이 흔히 하는 방식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생각의 지름길로 도망치곤 한다.

p.63

말 그대로 시키는 대로 하고 산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거, 좋아하는 거에 관심을 더 가질 필요가 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켜고,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포털 사이트의 뉴스 조각들을 의미 없이 훑는다. 회사에서는 어제와 똑같은 방식으로 늘 하던 대로 업무를 처리한다. 이것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지는 것'이다.

p.64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태어났으니 산다 같은 느낌 아닐까. 나는 짧게 살더라도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겠다.

나는 생각을 일종의 '선취 행위'라고 정의한다. 말 그대로 '미리 취한다'는 뜻이다. 내 삶 속의 선취 행위란 내가 온전한 주관자가 되어 미래의 시간을 현재로 끌어와 미리 살아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단순한 예측이나 걱정과는 다르다. 의지를 미래의 시간에 투영해 그 시간이 나에게 유믜히하게 흐르도록 만드는 적극적인 창조 행위다.

뇌과학이 증명했듯 우리 뇌는 생생한 상상과 실제 경험을 구분하지 못한다. 상상하는 순간, 뇌는 그것을 이미 겪은 일로 받아들인다.

<마인드 셋>의 저자 캐롤 드웩(Carol Dweck) 교수는 이를 '정서적 설계사고'라는 개념으로 증명해냈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단순히 성공한 결과만을 막연하게 꿈꾼 그룹보다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닥칠 난관과 그 떄 느낄 감정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 구체적인 핼ㅇ동까지 미리 시뮬레이션한 그룹이 월등히 높은 성과를 냈다. 뇌가 그 과정을 '이미 겪은 경험'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p.66 ~ 67

서울에서 일할 때, 아침 출근길에 오늘 회사에서 할 일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출근 한 날은 일이 쉬웠고, 너무 힘들어 아무 생각 없이 출근한 날은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다. 나는 한 번 정리를 했느냐 안했느냐 차이로 느꼈는데, 이걸 보니 정서적 설계사고의 차이였나 보다.

선취가 미래를 미리 사는 것이라면 복기는 과거를 내 것 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이를 '메시아적 시간관'이라 불렀다. 이는 단순히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물리적 시간이 아니다. 흘러간 과거의 기억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기대가 '지금, 여기'라는 현재의 순간에 응축되어 폭발적인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시간이다.

p.68 ~ 69

복기는 상당히 중요하다. 다 이해한 것 같은 내용도 다시 복기해보면 끊기는 부분이 있다. 이런 부분을 복기를 통해 메꿔나가면 지식이 한층 업 된걸 느낄수 있다.

#영감 없는 삶에서 창의성은 생성되지 않는다.

나는 생각을 크게 세 가지 층위로 나누어 정의한다. 저티는 힘인 '정신력(Mental)', 세상을 대하는 태도인 '마음가짐(Mind)' 그리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영감(Spirit)'이다. 정신력이 어떤 행위를 끈기 있게 밀고 나가는 내재적 엔진이라면, 마음가짐은 가 행위를 어떤 태도로 대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방향키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인 영감은 꽊 막힌 상황을 단숨에 뚫어내는 직관적 통찰이자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창발성의 근원이다.

이 세 가지의 균형이 무너지면 어떻게 될까? 멘털이라 불리는 정신력이 부족하면 시작조차 두려워하는 자신감 결여 상태가 된다. 반대로 강인한 정신력만 있고 유연한 마음가짐이나 영감이 부족하면 우직함을 넘어 미련함에 가까운 상태가 된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영감의 부재다. 아무리 강한 정신력과 좋은 태도를 갖췄다 해도, 번뜩이는 영감 없이 맨몸으로 부딪치다 보면 에너지가 쉽게 고갈되어 번아웃 상태가 되기 십상이다. 노력에 비해 성과가 나오지 않는 시행착오가 반복되고, 결국 '나는 안 되는 사람인가' 하는 자괴감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p.70 ~ 71

회사에서 일했을 때 많은 문제를 해결했었다.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믿고 있었고 실제로 있었다. 나에게 문제는 쉬웠고 방법들이 잘 떠올랐다. 아마 그건 공부를 많이 해놔서 인거 같다. 공부를 많이 하면 정신력, 마음가짐, 영감이 모두 따라오는것 같다.

영감을 부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나를 낯선 곳에 홀로 두는 것이다.

평소에 '고독한 향유'의 시간을 자주 가지며 내면의 그릇을 비워두어야 결정적인 순간에 새로운 영감이 깃들 수 있다. 이렇게 나를 비워내고 나면 타인을 향한 시선이 열린다. 고요해진 내면의 공간에 세상과 이웃이 들어올 자리가 생기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영감의 또 다른 원천인 이타심이 작동한다.

타인과 공동체를 위하는 마음을 품는 순간 우리의 뇌는 평소 쓰지 않던 영역까지 활성화된다. 나의 이익을 넘어 누군가를 돕겠다는 순수한 마음은 계산적인 사고로는 도달하 수 없는 직관과 통찰의 문을 열어 젖히기 떄문이다.

p.72 ~ 73

여기서 '낯선 곳에 홀로 두어야 한다.'라는 말은 물리적인 것도 있겠지만, 내가 해보지 못한 것을 해봐야 한다라는 의미인거 같다. 내가 모르는 분야의 공부라던지, 새로운 여행이라던지 같은 행위를 포함하는 말이지 않을까 싶다.

영감이 순간의 반짝임이라면, 그것을 내 삶의 결과물로 완성하는 힘은 생각의 근력이다. 이 근력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고, 그 답에서 다시 새로운 질문을 캐내는 치열한 과정인 생각의 이음 속에서 단단해진다.

잡념이 끼어들면 부드럽게 밀어내고 다시 원래 주제로 돌아오는 힘이 곧 생각의 근력이다.

이 훈련이 반복되면 생각의 근련이 단단해지면서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A와 B가 연결되는 짜릿한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장의성이다.

창의성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가 아니다. 하나의 문제를 깊게 파고들다가 그 깊은 곳에서 다른 영역의 뿌리와 맞닿는 것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p.75 ~ 76

책을 읽다보면 중간중간 이런 순간이온다. 요즘은 다시 잡념을 밀어내고 책에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생각 공부 원인론과 목적론의 통합

타인의 성공을 부러워먼 하는 이들의 내면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들은 도전을 시작하기도 전에 하지 않아도 될 핑계부터 찾는다. 자신의 상황과 조건을 넘어야 할 산이 아니라 나를 가로막는 걸림돌로만 치부해버리는 것이다. '나는 흙수저니까 안 돼'라는 말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다. 스스로를 실패의 감옥에 가두는 자기 최면이다.

이러한 생각방식을 심리학에서는 '원인론적 사고'라고 부른다. 과거의 어떤 원인 떄문에 현재의 결과가 이미 정해졌다고 믿는 태도다.

p.79

서울에서 일하다가 우울증이 심해져서 부산에 내려왔다. 지금은 우울증이 많이 괜찮아 진거 같은데 다시 일하러 나간다는게 무섭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을 타면 간혹 호흡곤란이 오기 때문에 출퇴근이 너무 힘들기 때문인다. 이것도 원인론적 사고일까?

우리의 뇌는 변하지 않는 과거의 사실을 현재로 끌어와 제멋대로 해석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해석된 기억을 '트라우마'라고 부른다.

과거가 나를 규정한다고 믿는 순간, 변화의 문은 닫힌다.

p.80

내가 출퇴근이 힘들어 일을 하기 힘들다는 것 또한 트라우마이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할까? 진짜 힘든데

이 닫힌 문을 여는 열쇠가 바로 아들러 심리학의 '목적론적 사고'다. 아들러(Alfred Adler)는 "트라우마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했다. 이 말은 과거의 상처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과거의 사건 자체가 나를 지배하도록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원인론에 머물면 우리는 영원히 피해자로 남는다. 하지만 목적론을 받아들이면 시각이 바꾸니다. '부모님 떄문에 내가 소심해졌다'고 탓하는 대신 '관계 스트레스를 피하고 싶어서(목적) 소심함을 핑계로 숨어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p.81

일을 하기 싫어서 호흡곤란이라는 핑계에 숨어있다? 나는 일 하는 걸 엄청 좋아하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감도 안온다.

물론 무조건 과거를 잊고 미래만 보라고 다그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다. 상처는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프로이드(Sigmund Freud)와 아들러를 통합해야 한다. 프로이트의 시선으로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인정해주되(자기 수용), 아들러의 시선으로 내가 원하는 미래를 향해 용기 있게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목적 지향).

과거의 상처조차 성장을 위한 거름으로 재해석하는 힘, 그것이 바로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진짜 생각'이다

p.82

호흡곤란 떄문에 힘든 건 사실이지만 지금은 조금 컨디션이 좋아지기도 했다. 다시 프로그래밍 공부를 해서 서울에가서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전에도 일은 잘했으니까 이번에도 잘 해낼 수 있다.

목적론적 사고는 우리에게 '선택할 용기'를 준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원하는 미래를 위해 지금 당장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하게 만든다. 삶의 주도권은 바로 이 선택의 순간에 되찾아진다.

p.84

원인론적 사고에 절여진 나지만, 목적론적 사고를 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어차피 과거는 바꿀수 없으니까.

#수도자에게 배우는 생각의 지혜

수도자의 마인드셋이란 산속으로 들어가 홀로 고립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도 잡념과 외부의 방해를 걷어내고 내 안의 진짜 목소리를 듣는 훈련을 의미한다. 내 삶의 목적을 잃지 않고 고요한 집중력을 유지하는 태도, 이것이 바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수도자적 삶이다.

p.88

이 또한 나를 잘 알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타인에 휘둘리지 말자.

내가 진정으로 원하지만 능력이나 환경이 허락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멈추는 것은 포기다.

반면 내려놓기는 다르다. 이것은 내 안의 욕망이 사실은 나의 것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에 일어난다.

p.92

포기하지 말고, 내려놓기를 연습하자.

자기 수용이란 빛나는 강점뿐만 아니라 감추고 싶은 약점, 성공과 실패의 모든 측면을 평가 없이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태도다.

만약 자기 수용이 결여되면 어떻게 될까? 내면의 중심을 잡지 못한 채 타인에게 의존하게 된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기에 타인의 평가와 칭찬, 지지와 돌봄에 과도하게 매달리며 그들의 시선에 갇힌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자기 수용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자기계발은 우격다짐으로 하는 노력에 불과하다. 그 결과로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피로감과 성과 없음뿐이다.

p.93

내가 잘하는 것, 내가 부족한 것을 마주하고 인정하는데서 자기 수용이 이루어진다. 자기 수용이 되어야 타인에게 휘둘리는 삶이 아니라 내 삶을 살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끌어안는 생각법

자기 수용은 '자기 긍정'과는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자신의 단점과 한계까지 모든 면을 평가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자기 수용의 본질인 반면, 자기 긍정은 자신의 강점과 성취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태도다. 그래서 자기 긍정은 능력과 가치를 인지하고 긍정적인 자아상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자기 수용은 한계와 단점을 인식하고 기꺼이 받아 들여서 건강한 정신 상태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두 개념은 엄연히 다르지만 상호 보완적이며 함께 실천할 때 건강한 자아 발전과 행복에 기여한다.

현실 감각이 결여된 맹목적인 자기 긍정은 약이 아니라 독이다. 이는 현실을 왜곡하고 근거 없는 자기 암시에 빠지게 만들어 결국 감당할 수 없는 목표에 집잡하게 되고 만다. 그 끝은 필연적으로 심리적 불안과 기은 무기력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순서가 중요하다. 자기 긍정은 반드시 자기 수용이라는 단단한 대지 위에서 피어나야 한다.

자기 수용을 통해 현재의 내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지점에서 한 걸음씩 내딛으며 그 걸음마다 '나는 성장하고 있다'는 긍정의 시선을 더할 때 우리의 잠재력은 현실의 능력으로 전환된다.

p.96 ~ 97

나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칭찬을 받아도 내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칭찬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것도 일종의 자기 수용이 덜 되서 그런 것 같다. 반면 내가 만족할 만큼 했을 때 받는 칭찬은 진심으로 느껴져서 성장하는데 많이 도움이 되었다. 확실히 자기 수용이 이루어 진 다음에 자기 긍정이 되어야 효과가 있다.

왜 우리는 그토록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기 힘들어할까? 단순히 자존감이 낮아서가 아니다. 우리 내면에서 나를 보호하는 아주 강력한 심리적 방어기제가 작동하고 있기 떄문이다. 이 방어기제는 세 가지 두려움을 먹고 자란다.

첫째, '낙인'에 대한 두려움이다. 많은 사람이 수용을 인정과 혼동한다. 현재의 초라한 내 모습을 받아들이는 순간, 스스로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것과 같다고 느낀다.

둘째, 비참함이라는 감정에 대한 공포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고통을 피하려 한다. 내가 외면해왔던 나의 지질함, 게으름, 실패한 기억을 정면으로 마주할 때 밀려올 비참한 기분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것이다.

셋째, 변화에 대한 부담감이다. 이것이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이유일지 모른다. 문제를 인정하는 순간,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의무가 생긴다.우리는 변화의 압박이 너무 크기 때문에 차라리 모른 척하고 현재의 익숙한 불행에 머무는 쪽을 택하곤 한다. 변화에 대한 책임이 두려워서 눈을 감아버리는 회피 심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거인은 잘 안다. 이 두려움의 실체가 사실은 허상이며, 심리적 방어기제들은 우리 무의식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 삶을 조종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는 세 가지 무의식에 기인한다.

첫째는 '경쟁의 무의식'이다 많은 이가 '남보다 뒤쳐지면 끝장'이라는 강박 속에서 산다. 이 소모적인 고리를 끊으려면 시선을 밖에서 안으로 돌려야 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트랙을 열심히 달리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분석적으로 나의 성장에 집중할 때 경쟁은 공포가 아니라 건강한 자극이 된다.

둘 째는 '학습된 무능력의 무의식'이다. 이것은 변화에 대한 부담감이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핑계다. 성적표는 당신이 지닌 수많은 능력 가운데 극히 일부만을 측정한 결과일 뿐이다.

셋째는 '부정 평가의 무의식'이다. 보고서를 낸 뒤 상사의 미간이 조금만 찌푸려져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거나, 누군가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 밤잠을 설친다면 당신은 타인의 평가를 내 존재 가치와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한 일에 대한 비판은 '나의 일'에 대한 것이지, '나라는 사람'에 대한 낙인이 아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주관적 평가와 객관적인 피드백을 분리해서 듣는 연습을 해야 한다.

p.98 ~ 101

모두 나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이 생각들을 완전히 떨칠순 없겠지만, 그런 순간을 마주하게 되면 이제는 조금 마음을 달래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나를 긍정할 수 있을까? 막연한 위로로는 힘이 없다.

이는 독일의 저명한 심리치료사 클라우스 베른하르트(Klaus Bernhardt)의통찰에서 차용한 방법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어느 날 갑자기공황이 찾아왔다>에서 불안과두려움에 잠식된 뇌를 구원하는 방법으로 '10개의 문장 기법'을 제안했다. 우리의 뇌는 상상과 현실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어떤 말을 반복적으로 들려주느냐에 따라 뇌의 신경 회로가 물리적으로 재배선된다는 것이다. 즉 이것은 단순한 자기 위로가 아니라 뇌의 반응 경로를 긍정적으로 다시 프로그래밍 하는 작업이다.

확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Integrity)'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말들을 기계적으로 따라 하는 것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 그것은 나의 상황을 반영한 내 문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삶의 맥락과 닿아 있지 않은 남의 말은 뇌가 거짓말로 인식하고 튕겨낸다.

베른하르트는 뇌가 반응하는 문장에는 다섯 가지 법칙이 있다고 강조한다.

첫째, 부정어를 쓰지 않는다. 둘째, 반드시 현재형으로 써야한다. 셋째, 구체적이어야 한다. 넷째, 스스로 달성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다섯째, 오감을 활용한다.

p.101 ~ 103

내가 이루고 싶은 것, 내가 듣고 싶은 말 등 10가지 문장을 적어봐야겠다.

나답지 않은 노력, 남들이 좋다고 해서 억지로 하는 노력으로는 결코 내가 강조하는 '미친 지속성'을 발휘할 수 없다. 진짜 성장은 나를 아는 것에서 시작해 나를 믿고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완성된다.

p.106

계속해서 나를 먼저 파악하라는 의미를 가진 문장들이 등장한다. 나에 대해 더 자세히 알려면 어떤 책들을 읽어야 할까?

#내 안의 감정들을 제대로 공부하는 법

앓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저서 <철학의 위안>에서 우리가 느끼는 불안의 실체를 여섯 가지 존재로 분류했다. 인기 없는 존재, 가난한 존재, 좌저한 존재, 부적절한 존재, 상실한 존재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존재가 그것이다.

첫째, '인기 없는 존재'의 불안이다. 이는 단순히 친구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나만의 고유한 색깔, 즉 아우라가 희미해질 때 느끼는 불안이다. 이 불안을 잠재우는 길은 타인에게서 인기를 갈구하는 것이 아니다. 내 안의 고유성을 발견하고 가꾸어 누구로도 대체할 수없는 매력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둘째, '가난한 존재'의 불안이다. 여기서 가난은 통장 잔고의 문제만이 아니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소유적 실존양식'에 갇힌 상태를 말한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소비를 부추기며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우리를 상대적 빈곤감에 빠뜨린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이 허기진 불안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소비가 아닌 존재로 삶의 방향을 트는 것이다.

셋째, '부적절한 존재'의 불안이다. 이 불안은 나의 본질과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불협화음을 낼 때 찾아온다. 내 안의 역동은 자유를 원하는데, 조직의 부속품으로만 기능해야 할때 우리는 자신을 무가지하고 부적절한 존재로 느낀다. 이럴 때는 맞지 않는 옷에 몸을 억지로 구겨 넣지 말고 내 존재가 숨을 쉴 수 있도록 환경을 바꾸는 용기를 내야 한다.

넷째, '상심의 존재'의 불안이다. 살다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소중한 것을 떠나보내는 상실의 순간이 반드시 온다. 그 아픔을 기록하고충분히 기억하면서 온 마음을 다해 애도했을 때 치유가 시작되었다.

다섯째, '어려움에 처한 존재'의 불안이다. 누구나 인생의 오르막길 앞에서 숨이 턱 하고 차오르는 순간을 맞이한다. 역설적이게도 그 고통 없이는 어떠한 미덕도 완성되지 않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고통은 나를 무너뜨리려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더 높은 차원으로 데려가기 위해 온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한 걸음 더 내딛는다면 그때 고통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성장의 연료가 된다.

p.110 ~ 113

나 자신을 알고 공부하고, 고통이 오면 마주하는 것에서 부터 모든 불안은 잠재울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의 말대로 불안은 여러 개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크게 두 가지 줄기로 나눌 수 있다. 바로 '표면적 불안'과 '근원적 불안'이다. 이 중 표면적 불안은 타인의 시선이나 외부 상황에서 비롯되는 즉각적인 공포다. 나는 아주 엉뚱하지만 강력한 처방을 내리고 싶다. '작정하고, 적극적으로 한번 망쳐보라'는 것이다.

특정 사건 떄문에 생기는 표면적 불안과는 달리 '근원적 불안'은 삶 자체를 향한 근본적인 의심에서 비롯된다. 결국 근원적 불안을 잠재우는 힘은 삶의 모순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나온다. 인생은 의미 있는 순간들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무의미해 보이는 고통과 비루한 일상까지도 삶의 일부로 껴안을 때 삶은 온전한 진정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근원적 불안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묻고, 나만의 철학을 단단하게 세우라는 내 영혼의 간절한 권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p.113 ~ 117

면접을 보거나, 발표를 하게 될 때 표면적 불안이 올라올 떄가 있다. 나는 그럴때마다 '100%를 뽐낼 생각 하지 말자. 70%만 평소 하던대로 딱 그정도로만 하자. 그게 만약 부족하다면 그냥 내가 부족한거니 더 나아지자'하는 마인드로 하는데 대체로 성공적이였다.

나는 근원적 불안때문에 20대 대부분을 집에서 누워지냈다. 그러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는데, 처음에는 정말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때의 고민들이 기준이 되어 단단하게 자리를 잡은 것같다. 가만히 누워만 있던 시간도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들이였던거 같다. 아무것도 아닌 시간은 없는 것 같다.

#불안의 세 가지 얼굴을 마주하라

우리가 느끼는 불안은 크게 세 가지 얼굴을 하고 있다. 과제 불안, 관계 불안, 미래 불안이 그것이다. 적을 알고 나면 싸움은 의외로 쉬워진다.

첫째, 당장 해야 할 일 앞에서 숨이 턱 막히는 '과제 불안'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실행 기술 이전에 뇌를 안심시키는 생각법이다. 나는 이것을 '만만하게 만들기'라고 부른다. 프프로젝트를 완벽하게 해내야겠다고 생각하면 뇌는 공포에 질려 작동을 멈춘다. 대신 뇌에게 '그냥 딱 10분마느 제목 한 줄만 쓰고 말거야'라고 속삭여보자. 거창한 목표를 아주 하찮고 구체적인 행동 하나로 치환하는 순간, 뇌는 경계 태세를 풀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불안을 이기는 건 대단한 의지력이 아니라 시작의 문턱을 낮추는 영리한 생각이다.

둘째, 사람 사이에서 오는 '관계 불안'이다. 이것은 내 행복의 주도권을 타인에게 넘겨주었기 떄문에 생기는 비극이다. 이 불안을 잠재우는 방법은 '사랑받으려는 마음'을 내려 놓는 것이다.

셋째,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찾아오는 '미래 불안(인생 불안)'이다. 가장 기고 어두운 불안으로 이는 '보이지 않음'에서 온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시나리오 사고'다. 막연한 미래를 구체적인 장면으로 바꿔 뇌에 보여주는 것이다.

p.118 ~ 120

나는 20살이 넘어서는 첫째와 둘째 불안은 크게 느꼈던적은 없는거 같다. 하지만 셋째 불안인 미래 불안이 엄청났다. 아직도 이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여기서 제시한 '시나리오 사고'처럼 미래에 어떤 일을 하고 어디서 일을 하고 어떤 느낌일지 상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지.

그렇다면 요동치는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감정의 명시화'다

화가 나거나 우울할 때 그 감정은 마치 안개나 기체와같다. 형체가 없어서 잡을 수도 없고 내면을 둥둥 떠다니며 계속해서 나를 질식시킨다. 이때 종이를 꺼내 적어보라. 막연히 '기분 나쁘다'가 아니라 육하원칙에 맞춰 구체적으로 적는 것이다.

이렇게 감정을 글로 적는 순간 기체였던 감정은 고체로 응고된다. 고체가 되면 그 감정을 처리할 수 있게 된다. 객관적인 거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내 감정을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메타인지가 작동하는 것이다. 불안을 줄이는 또 한가지 방법은 엉뚱한 짓을 해보는 것이다. 일종의 환기에 해당한다.

p.120 ~ 121

감정을 글로 적어볼 생각은 한 번도 해본적 없다. 회사다닐 때 알았다면 동료 때매 받는 스트레스를 조금 줄일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우리는 흔히 행복을 '강도'의 문제로 착각한다. 로또 당첨이나 승진 같은 행운이 터져야만 행복해질 거라 믿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행운은 인생에서 가뭄에 콩 나듯 찾아오는 예외적인 사건일 뿐이다.

생각의 끈을 놓지 않고 미래를 선취하는 치열함, 과거의 상처를 성장의 거름으로 삼는 목적론적 태도, 못난 나까지도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 자기 수용..., 이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내 삶에 스며들 때 우리 마음의 밭은 비옥해진다. 이 비옥한 상태가 바로 행복의 기본 지수가 높은 상태다.

p.124

결국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갈 때 행복해진다는 말이다.

나는 매일 밤 잠들기 전, 다이어리를 펴고 나만의 회고 시간을 갖는다. 이른바 '4L 회고'다. 오늘 하루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Liked), 무엇이 부족했는지(Lacked), 그래서 무엇을 배웠는지(Learned), 내일은 무엇을 바라는지(Long for)를 차분히 적어 내려간다. 이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하루 종일 내면에 쌓인 감정 찌꺼기를 걸러내고 알맹이만 남기는 영혼의 정화 작업이다.

p.125 ~ 126

매일 하는건 무리일 거 같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라도 4L 회고를 해봐야겠다.

#2장. 요약

우리 뇌는 생생한 상상과 실제 경험을 구분하지 못한다. 상상하는 순간, 뇌는 그것을 이미 겪은 일로 받아들인다. 선취 행위를 통해 오늘 하루 어떻게 살아낼지 생각하면 뇌는 이미 경험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일을 마주할 때 훨씬 편해진다. 또한 복기를 통해 다시 한 번 내 것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생각의 세 가지 층위

  • 정신력
  • 마음가짐
  • 영감

영감을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낯선 곳에 나를 데려가는 것이다.

자기 수용을 하고 목적 지향적으로 삶을 설계해 나가야 한다.

자기 수용: 강점 뿐만 아니라 약점까지도 그대로 존중하는 태도이다. 즉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이다. 자기 긍정: 자신의 강점과 성취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태도이다.

자기 수용 위에 자기 긍정을 해야 효과가 있다.

나를 마주하기 어려운 이유

  • '낙인'에 대한 두려움
  • 비참함이라는 감정에 대한 공포
  • 변화에 대한 부담감 이는 세 가지 무의식에 기인한다.
  • '경쟁의 무의식'
  • '학습된 무능력의 무의식'
  • '부정 평가의 무의식'

나를 긍정으로 만드는 방법은 '10개의 문장 기법'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때 다섯 가지 법칙이 있다.

  1. 부정어를 쓰지 않는다.
  2. 반드시 현재형으로 써야한다.
  3. 구체적이어야 한다.
  4. 스스로 달성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5. 오감을 활용한다.

불안은 여러 개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 표면적 불안: 타인의 시선이나 외부 상황에서 비롯되는 즉각적인 공포에서 비롯
    • 망쳐보자는 마인드로 할 것
  • 근원적 불안: 삶 자체를 향한 근본적인 의심에서 비롯
    • 무의미해 보이는 시간들도 삶의 일부로 받아 들일 것

불안의 세 가지 얼굴

  • 과제 불안
    • 만만하게 만들기를 이용한다.
  • 관계 불안
    • 사랑받으려는 마음을 내려 놓자.
  • 미래 불안
    • '시나리오 사고'를 통해 불안한 미래를 구체적인 형태로 보여주자.

감정 다스리는 방법

  • 감정의 명시화
    • 글로 적음으로써 거리가 생기게 된다. 그러면 제3자의 시선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 엉뚱한 짓 해보기(환기)

행복해지는 방법

  • 목적론적 사고
  • 자기 수용

매일 밤 4L 회고 시간 갖기

  • 무엇을 좋아했는지
  • 무엇이 부족했는지
  • 무엇을 배웠는지
  • 다음주는 무엇을 바라는지

#3장. 관계와 소통을 배우다.

#진정한 나로 홀로 서야 비로소 잠재성이 발현된다

흔히 외로움을 '홀로 남겨진 쓸쓸한 상태'라고 정의하지만, 사실 우리가 느끼는 외로움의 실체는 '단절에 대한 공포'에 가깝다. 타인과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어야만 내가 존재한다고 믿는 착각이다.

왜 우리는 이토록 혼자 있기를 두려워할까? 진화심리학자들은 이를 생존 본능의 잔재라고 설명한다. 원시 시대에 무리에서 낙오된다는 것은 곧 맹수의 먹잇감이 되거나 굶어 죽는 것ㄹ을 의미했다. 그래서 인간의 뇌는 고립을 죽음으 ㅣ공포와 동일하게 느끼도록 진화했다. 심리학적으로도 타인은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누군가 나를 바라봐주고 인정해주지 않ㄹ으면 내 존재가 희미해지는 것 같은 불안을 느낀다. 파스칼(Blaise Pascal)이'인류의 모든 불행은 인간이 방 안에 홀로 조용히 앉아 있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갈파했듯, 우리는 침묵 속에서 마주할 내면의 공허가 두려워 끊임없이 소음을 찾아 헤멘다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David Riesman)은 현대인을 '타인 지향형'인간이라 정의했다. 내면의 나침반 대신 타인의 신호를 감지하는 레이더를 켜고 사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남들이 무엇을 하는지, 나를 어떻게 보는지 살피느라 정작 내가 누구인지는 잊어버린다.

p.131 ~ 133

학창시절 나는 이게 매우 심했다. 그런데 20살이 되고 집에서 무의미한 시간들을 보내면서 이 부분은 상당히 개선이 되었다. 지금은 외로움을 딱히 못 느끼고 산다.

혼자 있는 시간이 깊어져야 함께 있는 시간이 빛나고, 함꼐하는 기쁨을 알아야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소중해진다.

실존주의 철학자 폴 틸리히(Paul Johannes Tillich)는 이 관계를 아주 명쾌하게 정의했다. 그는 혼자 있는 고통을 '론리니스(Loneliness)'로, 혼자 있는 즐거움을 '솔리튜드(Solitude)'로 구분했다. 틸리히에 따르면 우리가 타인과 건강하게 연결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솔리튜드의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내면이 빈곤한 채로 누군가를 만나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상대에게서 결핍을 패우려 든다. 그것은 관계가 아니라 의존이고, 심하게 말하면 타인을 감정의 숙주로 삼는 착취다. 반면 혼자서도 충만한 사람은 타인에게 바라는 것 없이 온전히 주고벋을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완벽하게 혼자일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과 깊이 있게 함께할 수 있다.

p.133 ~ 134

나는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타인에게 크게 바라는 점도 없다. 내 인간관계가 스트레스 받지 않는데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무리 속에 섞여 있을 때 안도감을 느끼지만, 그때 나의 고유한 빛깔은 군중 속에 묻혀 희미해진다. 반면 홀로 서 있는 사람은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기대지 않기에 스스로 빛난다. 이것은 외로움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자립의 당당함'이다.

p.136

혼자 있는 것이 익숙해질때쯤 어디 다닐때도 당당하게 다니기 시작한거 같다.

세상이 정해준 대로 떠밀려 살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힘껏 던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타인의 소음을 차단하고 홀로 버티는 시간이다.

p.137

혼자가 익숙해지고 나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던거 같다. 그 과정에서 프로그래밍을 내가 좋아하고 잘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홀로서기로 가는 길에는 수많은 장애물이 놓여 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군중 속으로 도망친다. 단순히 외로워서가 아니라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두려움과 사회적 습관이 교묘하게 결탁해 그곳으로 밀어내기 떄문이다. 이 방해물들의 실체를 정확히 알아야 걷어낼 수 있다. 그럼 그 방해물들을 살펴보자.

첫째는 눈치 보기와 겨합된 '인정 중독'이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서열 문화와 체면치레는 끊임없이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하게 만든다.

둘쨰는 조건 달기 뒤에 숨은 '자기 직면의 두려움'이다. 우리는 흔히 '취직만 하면', '돈을 좀 더 벌면' 홀로 설 수 있을거라 믿으며 현재를 유예한다.

셋째는 침묵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고립감'이다. 혼자 있는 것을 왕따나 도태된 상태로 오해하며, 잠깐의 틈만 생기면 스마트폰을 켜고 TV를 틀어 소음을 채워 넣는다.

이 견고한 방해물들을 넘어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히 '신경 쓰지 말자'고 다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눈치와 인정 중독을 꺠기 위해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라.

다음으로 침묵의 공포를 이기기 위해 소음을 차단하고 걷는 훈련을 해보라.

마지막으로 자기 직면으 ㅣ두려움을 넘어서기 위해 혼자 떠나는 여행을 감행해보라.

p.137 ~ 140

  • 인정 중독
  • 자기 직면의 두려움
  • 고립감 세 가지가 문제인데, 나는 이 부분에선 괜찮은 것 같다. 인정 중독은 있지만, 그 외에는 크게 느끼고 살지 않는다.

#관계에 집착하지 않고 사람을 사랑하는 법

'혼자는 외롭지만 누군가와 함꼐하는 것은 괴롭다'

많은 현대인이 겪는 딜레마다. 우리는 고립이 두려워 관계를 맺지만 그 관계가 주는 피로감과 상처 떄문에 다시 동굴로 숨어버린다.

p.141

학창시절 나는 이랬다. 혼자 있는건 외롭고 같이 있는건 힘든 뫼비우스의 띠였다.

흔히 인간관계를 감정의 영역이나 자연스러운 끌림으로만 생각한다. 그래서 인위적으로 거리를 두거나 기준을 정하는 것을 꺼린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다. 대부분의 관계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시작되었기 때문에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더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

p.142

따로 설계를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고 오래 만나고 싶은 사람들만 주변에 남았다. 불편한 관계들은 자연스레 안만나게 되고 멀어졌다.

한국 사회의 인관관계는 지나치게 뜨겁다. 가족, 학연, 지연으로 얽힌 끈끈한 관계, 즉 '핫 트러스트(Hot Trust)'가 지배한다.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챙겨주는 것을 우리는 정이라 부르며 미화하지만, 냉정히 ㄷㄹ여다 보면 그 이면에는 구속과 간섭 그리고 배타성이 도사리고 있다.

이 끈적한 관계의 질곡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쿨 트러스트(Cool Trust)'라는 새로운 관계의 문법을 익혀야 한다. 이 개념을 주장한 스웨덴의 역사학자 라르스 트레고르드(Lars Tragardh)는 실제로 스웨덴 정부의 신뢰 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쿨 트러스트를 현대 사회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관계의 표준으로 정립하는 데 앞장 섰다.

그가 말하는 쿨 트러스트의 핵심은 '의존 없는 사랑'이다.

우선 우리가 함께 발 딛고 사는 집이라는 공간을 생각해보자. 청소, 빨래, 설거지처럼 쾌적한 주거 환경을 만드는 일은 누구 한 사람의 희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이 일은 같은 공간을 점유하는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지 도와준다는 개념으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식사나 양육 같은 공동의 일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마치 회사에서 중요한 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과 같다. 감정적으로 얽매여 섷로에게 기대기보다는 유능한 팀원으로서 손발을 맞추는 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쿨 트러스트의 핵심은 그 다음이다. 각자의 직업이나 학업 그리고 취미생활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으로 넘어가며, 우리는 서로에게 기꺼이 타인이 되어주어야 한다. 서로의 삶에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는 과제 분리가 이루어질 때 집은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는 해방구가 된다. 공동의 일에는 뜨겁게 협력하되, 각자의 삶과 취향에는 시원하게 거리를 두는 '따로 또 함께'의 원칙을 우리 집에서부터 한번 실천해보면 어떨까.

가족만큼이나 우리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바로 직장이다. 이곳에서의 관계 역시 쿨 트러스트가 절실하다. 그런데 많은 직장인이 여기서 치명적인 실수를 범한다. 무의식적으로 동료와 친구가 되려 하거나,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들을려고 욕심을 부린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서 직장은 친목 도모를 위한 곳이 아니다. 성과랄는 분명한 목적을 위해 모인 '프로들의 공동체'다., 여기서 최고의 미덕은 상냥함이나 사적인 친밀감이 아니라 바로 일을 잘하는 것이다.

그러니 직장에서 무리하게 친구를 만들려 애쓰지 마라

p.143 ~ 147

나는 회사 다닐 때 동료가 일을 못하니 취미생활 할 시간에 공부나 더 하지 하는 마음이 자주 들었다. 이건 쿨 트러스트 답지 못했던거 같다.

회사에서 친구를 만들려고 한것도 있다. 좀 더 친해지면 더 편하게 일을 할 수 있을거 같아서 그랬다.

쿨 트러스트는 단순히 마음가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관성적으로 맺어온 관계의 틀을 깨고 내가 주도하는 새로운 판을 짜겠다는 구체적인 결단과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용기가 필요하다.

하나는 과감하게 끊어내는 용기다. 의무감 떄문에 억지로 이어오던 관계, 만나면 기가 빨리는 소모적인 관계를 의식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용기다. 과거에 ㅈ참 좋아했던 친구였는데 사는 게 바빠 잊고 지냈던 사람, 늘 마음속으로 동경했지만 용기가 없어 다가가지 못했던 사람, 혹은 나오 ㅏ결이 맞는 새로운 커뮤니티를 찾아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다.

p.148 ~ 149

첫 번째는 없는 거 같다. 하지만 두 번쨰는 좀 많다. 이참에 한번 연락해보아야겠다.

인간관계 클러스터 그리기

먼저 하얀 종이 한가운데 '나'를 적어보자. 그리고 그 주변에 내 삶을 구성하는 거대한 덩어리들, 즉 관계의 영역들을 원으로 그려 넣는다. 가장 가까운 가족부터 시작해 초중고 친구, 대학 동기, 직장 동료, 종교 모임, 취미 동호회, 혹은 이웃 등 대략 10개 내외의 원이 나올 것이다. 이것이 현재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관계의 우주다.

이제 그 원 주변에 사람들을 배치할 차례다. 현재 자주 만나는 사람뿐 아니라 연락이 뜸해졌지만 문득 생각나는 사람, 과거에 나에게 좋은 영감을 주었던 사람들의 이름도 모두 적어본다. 스마트폰 주소록을 뒤적이지 말고 오로지 내 기억의 필터에 걸려 남아 있는 이름들을 끄집어내보자.

이름을 다 적었다면 이제 냉정한 진단의 시간이다. 적어 놓은 이름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이 사람에게 끌림이 있는가?', '만나면 마음이 편안한가?', '계산 없이 무언가를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가?', '서로 배움을 주고받으며 성장을 돕는가?' 이 네 가지 질문은 관계의 본질을 꿰뚫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진단을 마쳤다면 이제 사람들을 네 가지 유형으로 재분류하고 그에 맞는 행동 지침을 세워야 한다. 이것은 관계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다. 가장 먼저 챙겨야 할 사람들은 '핵심 관계'다. 이들은 앞서 말한 끌림, 편안함, 이타심, 성장의 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내 인생의 보석 같은 존재들이다. 이들에게는 시간과 에너지를 아낌없이 투자해야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이들을 방치하는 것은 내 삶의 가장 큰 자산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다음은 '성장 관계'다. 서로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주고받으며 함께 발전하는 관계다. 독서 모임이나 프로젝트 팀원들이 여기에 속할 수 있다.

'안정 관계'도 있다. 자주 보지는 못해도 존재만으로 위안이 되는 오랜 인연들이다. 가끔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결단이 필요한 '거리두기 관계'다. 만나면 기가 빨리고 부정적인 에너지를 쏟아내는 에너지 뱀파이어들, 혹은 나를 존중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정 때문에 혹은 관계가 끊어지는 게 두려워 이들을 억지로 끌고 간다. 하지만 과감해져야 한다. 이들과는 관계를 정리하거나,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의 예의만 갖춰 대하고 철저하게 거리를 두어야 한다.

p.149 ~ 151

거리두기 단계의 사람은 내 주변에 없을거 같지만 한 번 정리 해보아겠다.

클러스터가 내 관계의 지형을 한눈에 보여주는 지도라면, '친구 수첩'은 관계의 깊이와 역사를 담아두는 '비망록'이다.

나는 수첩의 한 페이지 상단에 내가 소중하게 분류한 핵심 관계나 성장 관계에 있는 사람의 이름을 적고, 그 아래에 내가 파악한 그의 특징을 짧은 메모로 남겨둔다.

p.153 ~ 155

매번 듣던 얘기 아니면 아무것도 기억못하는 나에게 이런 수첩은 필요할거 같다. 인간관계 클러스터를 그리고 친구 수첩도 적어보아야겠다.

#공감과 환대, 어른의 관계 맺기

그 거대한 타인의 우주와 만나는 유일한 방법이 '공감'이다. 공감은 단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치는 리액션이 아니다. 불쌍한 사람을 보며 느끼는 동정이나 연민과도 결이 다르다. 공감은 상대방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는 것이다. 즉 나라는 안전지대를 벗어나 타인의 관점과 감정에 빙의해 보는 일이며, 지적이고도 정서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p.159

나는 참 공감이 어렵다. 매번 문제를 해결하려 들기 때문이다. 깊게 몰입 안하고 거리를 두면 오히려 공감이 쉬웠던거 같다.

안타깝게도 인류를 여기까지 생존하게 했던 이 위대한 능려은 현대 사회에 이르러 급격히 퇴화하고 있다. 역사학자 크리스틴 로젠(Christine Rosen)은 이를 두고 '경험의 멸종'이라 경고했다. 우리는 이제 타인의 얼굴을 마주 보는 대신 스마트폰의 액정을 들여다보고, 육성이 오가는 대화 대신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전한다.

기술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주었지만 그 대가로 불편함을 견디는 근육을 앗아갔다.

p.160 ~ 161

공감 결여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였구나. 다행인건가?

타인은 나의 세계를 넓혀주는 유일한 통로다.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산 사람의 이야기가 전혀 다른 삶을 산 사람의 이야기가 내 안으로 들어올 때 내 좁은 경험의 벽은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세계가 들어선다. 공감이 사라진다는 것은 이 경이로운 확장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린 채 내 안에 고립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공감 능력의 상실은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기 전에 자기 자신에 대한 방임이다.

그렇다면 이 무감각의 늪에서 빠져나와 다시 타인과 연결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시몬 베유(Simone Weil)가 그 해답으로 '주의 깊은 관심'을 말했듯이 불행한 사람에게 '내가 당신을 보고 있다'는 사릴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가장 순수한 형태다.

여기서 '본다'는 것은 시신경으로 사물을 인지하는 차원과는 다르다. 나의 편견, 나의 판단, 나의 조급함을 잠시 내려 놓고 텅 빈 마음으로 상대를 오롯이 받아들이는 내적 노력을 뜻한다.

p.162 ~ 163

공감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그게 생각처럼 쉽게 되지는 않는다. 상대를 오롯이 받아들이는 노력... 나를 받아들이는데도 오래걸렸는데... 상대를 공감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공감이 타인의 마음 안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놓는 것이라며, '환대'는 그 타인을 내 삶의 공간으로 기꺼이 초대해 머물게 하는 행위다.

자리를 내어주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낯선 타인은 본능적으로 우리에게 긴장감을 주기 때문이다. 내 평온한 일상에 누군가 불쑥 들어온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뺏길지도 모른다는 마음의 부담을 동반한다.

그럼에도 데리다는 '절대적 환대'를 이야기한다. 그것은 방문객의 이름이나 신분을 묻지 않고, 그가 나에게 이익이 될지 손해를 끼칠지 계산하지 않은 채 문을 활짝 열어주는 마음이다. 물론 귀찮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나의 편안함을 기꺼이 포기하고 타인을 받아들이는 이 무모해 보이는 용기야말로 혐오오 ㅏ배제로 얼룩진 차가운 세살을 구원할 유일한 온기다.

앞서 말한 쿨 트러스트가 '함부로 개입하지 않는 존중(거리두기)'이라면, 환대는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포용(자리 내어 주기)'이다. 조건을 묻지 않고 존재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순간, 상대방은 자신이 온전히 존중받고 있다는 깊은 안도감을 느낀다. 그것이 절대적 환대의 시작이다.

p.164 ~ 167

이 부분은 와닿지 않는다.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절대적 환대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해 보인다. 사기꾼한테 사기 당하기 딱 좋은 상황에 놓이는 것과 같아 보인다.

#나를 성장시키는 대화와 토론법은 따로 있다

진심을 다해 이야기했음에도 '도무지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라는 차가운 평가를 받거나, 엉뚱한 논쟁에 휘말려 자신의 귀한 식견마저 폄하 당하는 것이다.

이 안타까운 불통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단순히 말재주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소통의 가장 기초적인 문법, 즉 '대화'와 '토론'의 결정적인 차이를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화는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나누며 제3의 의미를 생성하는 과정이다.

반면 토론은 그 결이 다르다. 대화가 서로의 생각을 섞어 새로운 것를 빚어내는 '화확적 결합'이라면, 토론은 각자의 논리로 상대를 설득하고 검증하는 '물리적 충돌'이다. 특정 주제를 두고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치열하게 논증하는 과정은 비판적 사고를 기르고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는 민주주의의 핵심 도구다.

그헣다면 이 치열한 전장에서 승리하는 토론의 조건은 무엇일까? 그것은 말재주나 목소리 크기가 아니다. 바로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이 말한 '판단 중지(Epoche)'의 태도다.

상대의 논리를 있는 그대로 직시할 줄 아는 기숳을 가진 사람이다. 내 경험이 절대적 진리가 아님을 인정하는 지적 겸손함, 그것이 토론의 출발점이다.

또한 기억핼야 할 것은 토론은 사람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논리를 세우는 과정일하는 점이다. 나의 논제가 상대의 예리한 반박을 깨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것은 패배가 아니다. 하나의 주장이 그에 반대하는 주장과 부딪쳐 깨지는 고통을 겪은 뒤에야 더 높은 차원의 진리로 도약할 수 있다.

내가 틀렸음을 쿨하게 인정하고 더 나은 결론을 수용할 때 우리는 패자가 아닌 '진리의 승자'가 된다.

p.171 ~ 174

나는 대부분을 토론을 했던거 같다. 맞고 틀림을 매번 따져 물었더. 앞으로는 대화를 위해 노력해봐야겠다.

생각은 많은데 말로 하면 뒤죽박죽 섞여버려 답답했던 적이 있는가? 이것은 머리가 나빠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생각의 서랍을 여는 순서, 즉 논리의 틀을 모르기 때문이다. 일본의 논리 전문가 데구치 히로시(Deguchi Hiroshi)는 논리적 말하기를 위한 네 가지 패턴을 제시했다.

대등 관계, 구체적인 근거로 신뢰를 쌓아라 추상적인 주장에 구체적인 팩트를 나란히 제시하는 기술이다. '제 생각은 A입니다. 그 근거로 첫째 통계 자료 a, 둘째 구체적 사례 b, 셋째 관련 에피소드 c가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병렬적으로 나열하면 주장은 단단한 현실의 뿌리를 갖게 된다.

대립 관계, 비교와 대조로 선명함을 더하라 반대되거나 성격이 다른 대상을 비교해 내 주장을 돋보이게 하는 방법이다., 'A'는 이런 장점이 있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반면 B는 그 문제를 이렇게 해결합니다'

인과 관계, 뤈인과 결과로 논리의 척추를 세워라 'A라는 원인 떄문에 B라는 결과가 발생했습니다'라는 구조는 너무나 당연해 보이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이 원인을 생략하 ㄴ채 결과만 주장하거나 엉뚱한 원인을 갖다 붙인다. 현상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때 인과 관계는 필수다.

측면 나열, 다각도로 조망해 입체성을 확보하라 하나의 사안을 여러 관점에서 쪼개 설명하는 방식이다. 가령 '경제적 측면에서는 A이고, 문화적 측면에서는 B이며 사회적 측면에서는 C입니다'라는 식으로 복잡한 문제를 입체적으로 분석하면 신뢰감을 높일 수 있다.

p.176 ~ 178

회사에서 프레젠테이션 할 때 유용할 것같다. 잘 기억해뒀다가 써먹어야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의 3요소로 로고스(Logos, 논리), 파토스(Pathos, 감성), 에토스(Ethos, 인격 매력)을 꼽았다. 재미있는 것은 에토스(60퍼센트) > 파토스(30퍼센트) > 로고스(10퍼센트) 순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즉 '말이 얼마나 논리적인가'보다 '누가 말하는가(에토스)'가 훨씬 중요하다는 뜻이다.

평소에 쌓아온 신뢰와 호감, 그리고 말하는 태도애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품격과 진정성이 설득의 절반 이상을 좌우한다. 우리가 누군가의 말을 믿는 것은 그 말이 논리적이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믿기 떄문이다.

그다음이 파토스다. 상대의 감정을 터치하고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능력이다. 논리는 맨 마지막이다.

설득하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담백하게 진심을 전할 떄 상대의 마음도 열린다. 진심을 담아 상대의 눈을 바라보고(에토스), 따뜻한 감성으로 공감하며(파토스), 마지막에 논리를 얹어라(로고스) 이것이 거인의 말하기다. 말은 입이 아니라 삶으로 하는 것이다.

p.179 ~ 181

유시민이 국회의원으로서 성공하지 못한데에는 로고스만 있어서 라는것을 알쓰신잡인가 어딘가에서 본거 같다, 논리보다는 사람 자체가 중요하다. 메모메모

#두려움 없이 대중 앞에 서는 법

말하기의 목적은 나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연결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평가 받으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내가 가진 이 작은 이야기를 당신과 나누고 싶다'는 사랑의 마음으로 다가갈 떄 두려움은 설렘으로 바뀐다.

바흐친의 관점에서 보면 말하기는 '내가 반쯤 짓고 나머지는 상대가 채우는 집'과 같다. 내 말이 조금 서툴러도 상대가 고개를 끄덕여 주면 그 말은 훌륭하게 완성된다.

p. 185 ~ 187

발표할 때 자주 하는 실수가 모든 것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려고 하는 것인거 같다. 그것보다는 서로간의 상호작용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습해야 할까? 마음가짐만으로는 부족하다. 몸이 기억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나는 다음의 세 가지 연습을 제안한다.

첫째, 완벽한 문장이 아닌 키워드를 준비하라. 둘쨰, 침묵의 시간과 눈 맞춤으로 공간을 지배하라. 셋째, 오픈 제스처로 마음의 빗장을 열어라.

p. 187 ~ 188

나는 자기소개할 때 준비를 하면 버벅이고 그냥 편한 마음으로 가서 첫 문장을 떼면 말이 잘 나왔다. 키워드만 준비하는 것이 확실히 말이 유연하게 잘 나온다.

#3장 요약

외로움은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겨야 해결된다.

인간관계를 대하는 태도

  • 쿨 트러스트: 공통의 일은 열정적으로 참여하되, 사생활엔 관심 끄기
    • 가족과도 직장에서도 친구사이에서도 이 부분이 중요하다.

인간관계 클러스터

  • 핵심 관계
  • 성장 관계
  • 안정 관계
  • 거리두기 관계

공감과 환대

  • 공감: 타인의 마음 안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놓는 것
    • 단순히 고개만 끄덕이는 것이 아님
    • 상대방이 되어 보는 것을 의미함
    • 공감은 한 사람의 우주가 나에게 오는 것과 같음
  • 환대: 그 타인을 내 삶의 공간으로 기꺼이 초대해 머물게 하는 행위 쿨 트러스트가 '함부로 개입하지 않는 존중(거리두기)'이라면, 환대는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포용(자리 내어 주기)'이다.

대화와 토론을 상황에 맞게 사용하자

  • 대화: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나누며 제3의 의미를 생성하는 과정
  • 토론: 각자의 논리로 상대를 설득하고 검증하는 과정

논리적 말하기를 위한 네 가지 패턴

  • 대등 관계, 구체적인 근거로 신뢰를 쌓아라
  • 대립 관계, 비교와 대조로 선명함을 더하라
  • 인과 관계, 원인과 결과로 논리의 척추를 세워라
  • 측면 나열, 다각도로 조망해 입체성을 확보하라

설득의 3요소

  • 로고스(10%)
  • 파토스(30%)
  • 에토스(60%) 논리 보다는 어떤 감정이 중요하고, 감정보다는 어떤 사람인가가 더 중요하다.

발표의 두려움 없애기

  • 완벽한 문장이 아닌 키워드를 준비하라.
  • 침묵의 시간과 눈 맞춤으로 공간을 지배하라.
  • 오픈 제스처로 마음의 빗장을 열어라.

#4장. 읽기와 쓰기를 배우다

#책을 많이 읽어도 삶이 바뀌지 않는 이유

그렇다면 책 읽기로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었다는 거인들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무슨 책들을 읽어온 것릴까? 그들은 책을 눈으로 읽지 않는다. 온몸으로 그리고 삶으로 읽는다. 냉정히 말해 책 자체는 죄가 없다.

p.194

나는 천천히 읽었지만, 눈으로만 읽었다. 그래서 기억나는 책이 거의 없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그다음 단계인 '심층 독서'다. 이것은 차가운 논리의 세계를 넘어 책이 내 가슴을 울리는 감성, 즉 파토스와 나의 태도와 인격을 형성하는 에토스의 영역까지 깊숙이 침투하는 경험이다.

p.196

어떻게 해야 온몸으로 삶으로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단순히 읽고 독서 노트를 쓴다고 그게 되는걸까?

진짜 노력과 진짜 몰입은 소유욕이 아니라 존재의 충만함에서 나온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p.198

빨리 많이 읽지말고, 천천히 느끼며 한권 한권 읽는 것이 중요하다.

독서가 내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려면 반드시 심층 독서를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읽는 것을 넘어 '생각 독서'와 '독서 메모'를 병행해야 한다.

p.199

읽으면서 생각하고, 그것을 독서 노트에 쓰는 것, 메모 독서법이랑 같은 말을 한다.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을 AI라는 도구와 결합해 새로운 서사로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과 소비만 하며 뇌를 방치하는 사람과의 격차는 앞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질 것이다.

p.200

같은 생각이다. 개발자 업계에서도 AI가 개발을 다 해주니까 뭔지 모르고 가져다 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다 문제가 제대로 터지면 해결하지 못해 난감할 것이다.

#어려운 책을 독파하면 인생이 퀸텀 점프한다

인간의 지능은 독립적이지만 그것들이 치열한 독서를 통해 상호작용하면 나선형의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형이 '양질전환'의 법칙을 온몸으로 증명했다는 점이다. 헤겔의 철학에서 유래한 이 개념은 양적인 축적이 일정한 임계점을 넘어서면 질적인 비약이 일어난다는 원리를 말한다.

p.207

메가스터디 현우진 강사도 그랬다. 압도적인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는거라고.

그렇다면 무조건 많이 읽기만 하면 될까? 아니다. 어떤 책을 읽느냐가 중요하다. 나는 세상의 책을 크게 두종류로 구분한다. 하나는 친구처럼 편안한 책이고, 다른 하나는 스승의 가르침처럼 공부하며 독파해야 하는 책이다.

친구 같은 책은 읽기 쉽고 재미있다. 소설, 에세이, 혹은 삶에 위안이 되는 책들이다. 이런 책은 혼자 있는 시간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훌륭한 휴식처가 된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이런 독서는 소비에 가깝다.

우리를 성장시키는 것은 공부하며 독파해야 하는 책이다. 고전, 인문 철학서, 전문 서적처럼 난해한 책들이다. 이런 책은 불친절해서 읽다가 자꾸 멈추게 만들고 모르는 용어가 튀어나와 우리를 긴장시킨다. 하지만 바로 그 멈춤과 긴장의 순간에 성장이 일어난다.

p.208 ~ 209

다행히 나는 친구 같은 책들을 별로 좋아하지않는다. 전문 서적이나 자기계발서 같은 부류의 책을 좋아하니 참 다행이다.

독서는 단순히 교양을 쌓는 취미가 아니다. 삶의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강력한 '선공부'의 수단이다.

p.209

일을 하며 느꼈다. 내가 만나는 수많은 문제는 이미 전문 서적에 답이 적혀있었다는 걸. 미리 공부했으면 좋았을탠데 아쉬웠다.

엔진의 마력을 높이고 인생의 차원을 바꾸려면 우리를 뇌의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난해하고 두꺼운 벽돌책을 집어 들어야 한다.

p.212 ~ 213

이런 책을 꺼려한 이유는 이해가 어렵고 한 권 읽는데 너무 오래걸려서이다. 근데 이젠 오래 걸려도 제대로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벽돌책을 읽지 못하는 이유는 아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세 가지 장벽 때문이다.

첫째, '낯선 뉘앙스'의 장벽이다. 우리가 벽돌책 읽기에 실패하는 것은 그 분야 특유의 글맛과 논리의 호흡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머리의 문제가 아니라 익숙함의 문제다. 인내심을 갖고 낯선 문투에 나를 노춣시키는 시간이 필요하다.

둘째, '기초 지식'의 부재다. 배경지식이 없는 독서는 도구없이 정글을 뚫고 가는 것과 같다.

셋째, '맥락 유지'의 어려움이다. 벽돌책은 호흡이 길다. 앞 장에서 저자가 깔아놓은 복선이나 논거를 기억하고 있어야 뒷장의 내용이 이해가 된다.

이 난공 불락의 요새를 함락하기 위해 세 가지 전략을 권한다.

전략 1: 통독 후 정독하기 전략 2: 챕터별 격파하기 전략 3: 함께 읽기

p.215 ~ 218

맞다 정확히 저 세 가지 이유때문에 어려운 책은 피하게 된다. 다음번에 읽을 땐 전략대로 읽어봐야겠다.

#삶이 두렵다면 글쓰기를 하라

독서가 내 안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흡입의 과정이라면, 글쓰기는 내 안의 것을 세상 밖으로 꺼내놓는 발산의 과정이다. 이 둘은 별개가 아니며 생명의 날숨과 들숨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p.220

이제서야 책을 읽으면 글을 써야한다는걸 알았는데, 여기에선 애초에 한몸이라고 한다.

나는 글쓰기의 본질을 다음 세 가지로 정의한다.

첫째, 기체를 고체로 만드는 '물성의 변환'이다. 우리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는 수만 가지 생각과 감정을 떠올려보자. 그것들은 형체가 없는 기체와 같다. 안개처럼 뿌옇고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이 기체는 그냥 내버ㄹ두면 제멋대로 팽창해 내 머릿속을 꽉 채우고 끝내 나를 질식시킨다. 하지만 펜을 들어 종이에 적는 순간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기체였던 생각과 불안이 문자라는 고체로 응고되어 눈앞에 뚝 떨어진다.

둘째, 나와 나를 분리하는 '거리두기'다. 머릿속으로만 고민할 때 나는 고통 그 자체가 된다. 하지만 펜을 드는 순간 기적 같은 분열이 일어난다. 책상 앞에 앉아 펜을 쥐고 '쓰는 나'와 종이 위에서 울고 웃는 '글에 쓰인 나'가 명확하게 분리되는 것이다.

셋째, 무질서한 삶에 질서를 부여하는 '건축'이다. 우리의 경험과 기억은 정리되지 않은 채 널브러진 벽돌 더미와 같다. 그냥 두면 그것은 시간의 흐름에 쓸려가는 잡동사니에 불과하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이 어지러운 파편들을 모아 논리적인 집을 짓는 '축조'의 행위다.

건축을 하려면 자재가 있어야 한다. 내가 평소에 그토록 메모를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스쳐 지나가는 생각, 길 가다 마주친 인상적인 장면, 책에서 감명 깊에 읽은 한 줄을 메모하는 것은 내 인생이라는 집을 짓기 위한 예쁜 벽돌들을 모으는 일이다.

p.221 ~ 225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가 되어 처리가 가능해진다는 말이다.

일상 속에서 아주 가볍게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 습관만 들이면 된다.

우선 하나는 수집의 습관이다., 생각 덤핑과 키워드 메모를 자주 하자는 말이다.

숙제 같은 일기 쓰기도 그만두자. 나의 일기 쓰기는 철저히 '내 마음이 부를 때' 이루어진다.

'분류하는 글쓰기'를 해보기를 권한다.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의 크기에 압도될 때, 그것을 세 가지(원인, 현상, 대안)로 쪼개서 적어 내려 가는 것이다.

p.227 ~ 228

  • 생각이 날때마다 모든 걸 메모하기
  • 일기를 의무감에 쓰지 말기
  • 글쓰기가 어려울 땐 쪼개서 처리하기

우리 뇌에는 생각 회로, 말하기 회로, 글쓰기 회로가 따로 존재한다. 말하기 회로는 어떤가. 우리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수십 년간 말을 해오고 있다. 덕분에 이 회로는 뻥 뚫린 고속도로와 같다.

반면 글쓰기 회로는 다르다. 가끔, 그것도 마음을 다져 각 잡고 쓸 때만 사용했기에 자ㅂ풀이 무성한 비포장 도로와 같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달리려니 당연히 덜컹거리고 속도가 나지 않는다. 지극히 정상이다.

이 막힌 회로를 뚫는 가장 영리하고도 검증된 전략은 이미 뚫려 있는 고속도로인 '말하기 회로'를 빌려 쓰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 방법을 단순히 쉬운 요령 정도로 생각하지만, 사실 이것은 문학사의 거장들이 오랫동안 사용해온 정통적인 집필 방식이다.

글이 막힐 때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허공을 보며 누군가에게 설명하듯 소리내 중얼거려보라. 그러면 말이 술술 나오는 지점이 반드시 온다. 그때가 뇌의 회로가 연결된 순간이다. 바로 그 문장을 그대로 받아 적어라.

p.229 ~ 231

블로그를 쓸때 이런 방식으로 썼었다. 글로 쓸 내용을 말로 해보고 부자연스러운 부분을 고치고 자연스럽게 말이 나올 때 까지 계속 수정하며 글을 썼더니 기억에도 잘 남고 내용도 잘 나왔었다.

나는 뇌의 서로 다른 영역을 골고루 자극해 잠든 감각을 깨우는 세 가지 글쓰기를 추천한다.

첫째, '현상'에 대해 쓰는 논리적 글쓰기다. 아주 단순한 3단 구성. 즉 '현상-생각-근거'의 틀에 맞춰 짧게 정리해보는 것이다.

둘째, '경험'에 대해 쓰는 묘사적 글쓰기다. 단순히 '맛있었다'. '좋다'는 식의 평면적인 표현은 버리자. '입안에서 톡 터지는 옥수수 알갱이의 달큰함', '옷깃을 파고드는 11월의 알싸한 바람'처럼 오감을 총동원해 그림을 그리듯 묘사해보라.

셋째, '과정'에 대해 쓰는 설명적 글쓰기다. 우리 삶은 수많은 절차와 순서로 이루어져 있다. 나만의 라면 끓이는 법, 헬스장에서 하는 운동 루틴, 혹은 복잡한 서류를 발급받는 과정 같은 것들이다. 이것을 누군가에게 가르쳐준다고 상상하며 글로 옮겨보라.

p.233 ~ 235

나는 블로그를 쓸 때 주로 첫째와 셋째 방식으로 썼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다음 번엔 둘째 방식도 넣어서 작성해보아야겠다.

#생각을 엮어 한 편의 글로 만드는 333의 법칙

'3-3-3의 법칙'으로 이는 무질서한 생각에 질서를 부여하는 가장 기초적인 가이드라인이다.

첫 번째 3: 글감과 소주제 정하기(세 가지 기둥 세우기) 글쓰기의 첫 번째 관문은 '무엇을 쓸 것인가'다. 주제를 정했다면 그것을 지탱할 소주제 세 가지를 떠올려라.

두 번째 3: 목차 짜기(3단 구성으로 지붕 덮기)

  • 서론(초대): 독자를 내 글의 세계로 초대하는 문이다.
  • 본문(전개): 앞서 정한 세 가지 소주제(기둥)를 배치한다.
  • 결론(매듭): 내용을 요약하고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며 문을 닫는다.

세 번째 3: 표현 스타일 정하기(세 가지 페르소나) 글의 목적과 독자에 맞춰 나의 페르소나를 정하는 것이다.

프로라면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내가 아닌 글에 가장 적합한 화자가 되어 연기해야 한다.

첫째, 에세이나 편지를 쓸 때는 위로하는 친구가 된다. 둘째, 보고서나 기획서를 쓸 때는 냉철항ㄴ 분석가의 옷을 입는다. 셋째, 정보를 전달하는 글을 쓸 때는 친절한 선생님이 된다.

p.237 ~ 240

나는 항상 주제를 정하고 바로 달려들었는데, 다음부터는 소주제도 3가지 정하고 시작해보아야겠다.

근데 짧은 글이라 3개까지 안나오는 경우에는 그냥 상황에 맞게 쓰면 되는거겠지? 아니면 내용을 더 포함시켜서 크게 써야하나?

#에세이와 보고서, 누구를 위한 글인지 파악하라

우리 같은 생활인이 마주하는 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나를 위한 글(에세이)'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을 위한 글(보고서)'이다.

p.242

내가 쓰는 블로그는 나중에 내가 찾아보기 위함도 있고, 남들이 보고 사용하라는 의미도 있는데, 이건 보고서에 가까운거겠지?

에세이는 정답을 쓰는 글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내기 위해 펜 끝으로 나를 찔러보고 더듬어보는 과정 그 자체다. 결론이 나지 않아도좋다. 문장이 좀 서툴러도 괜찮다. 흔들리는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보려는 시도 자체가 에세이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에세이를 쓸 때 만큼은 어깨에 힘을 빼자. 그 시간은 내가 나를 만나는 가장 사적인 순간이다.

많은 사람이 생각을 다 정리한 후에 쓴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우리는 쓰기 전까지 내가 진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른다.

p.243 ~ 244

나를 알기 위한 글은 써본적이 없어서 잘 와닿지 않는다. 그냥 내 감정을 달래주는 글이면 아무렇게나 써도 에세이란 것인가?

보고서는 철저히 상대방을 위한 글이다. 내 감정의 배설이나 자아 탐구는 잠시 접어두어야 한다. ㅅ오직 읽는 사람(상사, 교수, 클라이언트)이 무엇을 원하는가, 그들의 골치 아픈 문제를 내가 어떻게 해결해줄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다면 좋은 보고서의 핵심은 무엇일까?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가 남긴 통찰처럼 커뮤니케이션의 완성은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이 설득의 건축물을 짓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역시 '3-3-3' 법칙이다. 주제를 잡고(글감), 3단 구성으로 뼈대를 세우는(목차) 것이다. 하지만 보고서 쓰기에는 결정적인 과정이 하나 더 필요하다. 바로 자료 조사다. 논리라는 뼈대에 살을 붙이려면 팩트와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료를 찾았다면 그대로 복사하지 말고 반드시 한 번 씹어서 소화해야 한다.

  • 자료를 정독하거나 발췌독한다.
  • 핵심 내용을 파악한다.
  • 책이나 화면을 덮고 '나의 언어'로 독서 카드(혹은 메모장)에요약해 정리한다.
  • 그 밑에 이 자료가 내 주장에 어떻게 쓰일지 '나의 통찰'을 한 줄 덧붙인다.

p.245 ~ 247

내가 쓰는 블로그는 보고서이다. 자료를 수집하고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게 썼기 때문이다. 다른 블로그의 글을 그대로 가져오는 경우도 많았는데, 다음부터는 똑같은 내용이더라도 나의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쳐봐야겠다.

에세이가 내면을 향해 깊이 파고드는 수직의 글쓰기라면, 보고서는 세상과 타인을 향해 넓게 뻗어나가는 수평의 글쓰기다. 방향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둘 다 흐릿한 생각과 감정을 붙잡아 명료한 실체로 만드는 '창조의 행위'기 때문이다.

p.248 ~ 249

에세이든 보고서든 일단 글쓰기를 많이해서 글쓰기 감을 익혀야겠다. 무작정 쓰는 것이 아닌 여기에 나온대로 '3-3-3 법칙'을 의도적으로 생각하고 작성해보아야겠다.

#초고를 명문으로 다듬는 '탈고'의 기술

나는 글쓰기가 두려운 사람들에게 '초초고'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이것은 초고 이전 날것의 글로, 문법도 맞춤법도 무시하고 머릿속 생각을 속사포처럼 쏟아낸 결과물이다. 초초고를 쓰는 과정은 명확하다. 먼저 쓰고 싶은 주제에 대해 키워드를 메모하며 생각을 정리한다. 그리고 그 뼈대 위에 살을 입힐 에피소드나 소재를 추가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글을 통해 전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를 요약해본다.

초초고라는 덩어리를 만들어놓은 다음에는 거기에 살을 붙이고 다듬어 '초고'를 완성하면 된다., 잘 쓰려는 망므의 무게를 내려놓고 이 방법을 사용해보라. 대충 쓰려고 덤빌 때 가장 잘 쓴 글을 얻을 수 있다.

p.251 ~ 252

단순히 인강이나 책을 보고 정리하는 것이 아닌 내 생각으로 어떤 글을 쓰게 될때 이 방법을 사용해보아야겠다.

초초고 쓰는 방법

  • 주제에 대한 키워드 메모
  • 에피소드 소재 추가
  • 핵심 메시지 요약

나는 글을 다듬을 때 두 가지 마음의 원칙을 세운다.

첫째는 '덜어내기의 미학'이다. 글을 쓰다 보면 자꾸만 무언가를 더하고 싶어진다. 내 뜻이 전달되지 않을까 봐 불안해서 '그리고, 그래서, 하지만' 같은 접속사를 습관적으로 붙인다. 강조하고 싶은 마음에 '너무, 정말, 매우' 같은 부사들을 덕지덕지 바르기도 한다. 하지만 기억하자. 글은 뺄셈이다. 군더더기가 빠질수록 문장으 ㅣ뼈대는 단단해지고 의미는 선명해진다. 말끝을 흐리는 버릇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겸손해 보이고 싶어서 혹은 틀릴까 봐 두려워서 '인 것 같다.', '라고 생각된다'라는 표현 뒤로 숨곤 한다. 하지만 독자가 원하는것은 필자의 망설임이 아니라 확인이다. '~이다'라고 단정 짓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둘째는 '리듬감 불어넣기'다 잘 쓰인 글에는 고유의 호흡과 운율이 있다. 숨 가쁘게 몰아치는 짧은 문장 뒤에는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긴 문장을 배치해보자.

내가 가장 아끼는 퇴고의 비법은 '소리 내 읽기(낭독)'다. 눈으로 볼때는 매끄러워 보였던 문장도 입으로 소리내 읽어보면 턱턱 걸리는 부분이 있다. 호흡이 꼬이거나 단어가 겉도는 곳, 바로 그곳이 고쳐야 할 지점이다.

p.252 ~ 253

글을 쓰다보면 이러쿵 저러쿵 해서 글을 더 쓰게 된다. 확실히 절제한 글들이 이해가 잘되고 멋있다. 글을 쓰고 소리내 읽어보는 것 또한 내가 블로그 쓸 때 많이 했던 것이다. 매끄럽게 읽어지지 않는 부분엔 항상 근거가 부족했다거나 앞뒤 상황과 맞지 않았었다.

#4장. 요약

심층 독서 생각 독서와 메모 독서를 통해 심층 독서를 해야 책이 머리에 남는다.

책은 벽돌책을 읽어야 한다. 읽기 어려울 땐 아래 방법을 사용하자

  • 전략 1: 통독 후 정독하기
  • 전략 2: 챕터별 격파하기
  • 전략 3: 함께 읽기

글쓰기의 본질

  • 기체를 고체로 만드는 '물성의 변환'
  • 나와 나를 분리하는 '거리두기'
  • 무질서한 삶에 질서를 부여하는 '건축' 일상 속에서 아주 가볍게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 습관
  • 수집의 습관
  • 숙제 같은 일기 쓰기 금지
  • 분류하는 글쓰기

회로

  • 생각 회로
  • 말하기 회로(고속도로)
  • 글쓰기 회로(비포장 도로)
    • 말하기 회로를 빌려 글쓰기 회로를 활성화 시킬 수 있음(소리 내 읽어보기)

뇌의 서로 다른 영역을 골고루 자극해 잠든 감각을 깨우는 세 가지 글쓰기

  • '현상'에 대해 쓰는 논리적 글쓰기
  • '경험'에 대해 쓰는 묘사적 글쓰기
  • '과정'에 대해 쓰는 설명적 글쓰기

글쓰기의 3-3-3의 법칙

  • 첫 번째 3: 글감과 소주제 정하기(세 가지 기둥 세우기)
  • 두 번째 3: 목차 짜기(3단 구성으로 지붕 덮기)
    • 서론(초대): 독자를 내 글의 세계로 초대하는 문이다.
    • 본문(전개): 앞서 정한 세 가지 소주제(기둥)를 배치한다.
    • 결론(매듭): 내용을 요약하고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며 문을 닫는다.
  • 세 번째 3: 표현 스타일 정하기(세 가지 페르소나)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내가 아닌 글에 가장 적합한 화자가 되어 연기해야 한다.
  • 첫째, 에세이나 편지를 쓸 때는 위로하는 친구가 된다.
  • 둘째, 보고서나 기획서를 쓸 때는 냉철항ㄴ 분석가의 옷을 입는다.
  • 셋째, 정보를 전달하는 글을 쓸 때는 친절한 선생님이 된다.

에세이: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내기 위한 글쓰기(감정 O) 보고서: 상대방의 니즈를 충족시켜 주는 글쓰기(감정 X)

글쓰기가 어려울 때 초초고 부터 쓰고 초고로 넘어간다.

초초고 쓰는 방법

  • 주제에 대한 키워드 메모
  • 에피소드 소재 추가
  • 핵심 메시지 요약

글 다듬기 두 가지 원칙

  • 덜어내기의 미학
  • 리듬감 불어넣기

#5장. 실행력을 배우다

#오직 실행만이 나를 목적지에 도달하게 한다

구체적인 행위로 이어져 아웃풋을 생성해내지 못하는 인풋은 그저 '지적 비만'울 유발하는 잉여 칼로리일 뿐이다.

p.260 ~ 261

인룻이 많아야 아웃풋이 많은 것도 맞지만, 아웃풋으로 쓰지 않는 인풋 또한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실행력이란 바로 이 의도와 결과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다리를 놓는 공학적 기술이다.

우리에게 다리를 놓을 자재와 설계도가 필요하다. 그 설계도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메커니즘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 그것만이 실행력을 실제로 높일 수 있는 길이다.

첫째, '계획'으로 간격 자체를 물리적으로 좁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기술이 필요하다. 하나는 아웃풋의 구체화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막연한 의도로는 한 줄도 쓸 수 없다. 대신 'A4 두 장 분량의 칼럼을 쓰겠다'라고 결과물을 선명하게 구상하고 메모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세분화'다 큰 목표를 잘게 썰어 당장 오늘 할 수 있는 만만한 행동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둘째, 시간의 '밀도'를 높여 속도를 내는 것이다. 집중과 몰입을 통해 시간의 밀도를 높이면, 남들이 두 시간 걸려 갈 거리를 한 시간 만에 주파할 수 있다. 24시간이란 절대적인 시간(Chronos, 크로노스)을 나만의 주관적인 시간(Kairos, 카이로스)으로 바꾸어 쓰는 사람만이 남들보다 더 많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셋째, '루틴과 습관'으로 실행의 부하를 줄이는 것이다. 뇌가 고민할 틈도 없이 몸이 먼저 반응하도록 시스템(루틴)을 만들어야 한다,. 루틴은 시간, 장소, 과제 세 가지 요소에 의해 만들어진다. 가령 독서 루ㅍ틴을 설계할 때는 '아침 10시부터 11시까지(시간), 거실 한쪽 작은 화분이 놓여 있는 나만의 테이블 위에(장소), 커피잔을 올려놓고 책을 읽는다(과제)'라는 구체적인 값을 설정하는 것이다.

넷째, '미친 지속성'에 대한 자기 확신을 갖는 것이다.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위기가 찾아오게 마련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나는 과거에 극한의 몰입을 해본 경험이 있다'는 믿음이다.

다섯째, '회복탄력성'으로 안전망을 까는 것이다. 완벽주의와 욕심은 우리를 시작조차 못 하게 만든다. 하지만 설령 실패하건 우울감이 찾아와도, 그것을 회피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자기 조절력이 있다면 어떨까? 실패는 끝이 아니라 수정하고 보완하는 과정일 뿐이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안전감을 느낀다면 우리는 두려움 없이 과감하게 점프할 수 있다.

p.262 ~ 265

나는 회복탄력성이 약한거 같다, 나머지 부분은 이해했고 잘 해낼 수 있을거 같은데, 쓰러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것이 많이 힘들다.

계획은 소망을 적는 종이가 아니다. 아득한 절벽에 사다리를 놓는 이성적이고 적극적인 건축 행위다.

다이어리에 할 일을 적는 행위는 계획이 아니다. 계획은 저 멀리 있는 결과물을 내 눈앞으로 당겨오는 물리적인 작업이다. 이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설계가 필요하다.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아웃풋의 시각화다. 의도가 흐릿하면 결과와의 거리는 무한대로 느껴진다.

도착지를 확인한 후에는 그곳으로 가는 길을 놓아야 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과제의 세분화'다. 거대한 목표는 우리를 위협한다. 뇌가 감당하기에는 의도와 결과 사이의 간격이 너무 넓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덩어리를 뇌가 만만하게 느낄 수 있는 단위로 잘게 썰어야 한다. 보고서 작성이 아니라 자료 검색 30분, 목차 다섯 줄 쓰기, 서론 초안 잡기 등으로 쪼개는 것이다. 과제는 작ㅈ아질수록 실행의 마찰력은 줄어들고 결과와의 거리는 내가 통제 가능한 범위 안으로 들어온다. 이렇게 쪼개진 과제들을 논리적인 순서대로 배치하고 난 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바로 중간 산출물의 설계다. 최종 결과물만 바라보고 달리면 그 아득한 거리에 지쳐 쓰러지기 십상이다.

p. 267 ~ 268

  • 구체화
  • 세분화 책에 계속해서 나오는 내용이다. 글쓰기를 할 땐, 구체화하고 작업을 세분화 해야한다.

치밀한 계획으로 간극을 쪼개 놓았음에도 여전히 첫발을 떼기가 두렵다면 전략을 수정해서 우회로를 뚫어야 한다. 나는 이것을 '낮은 허들 만들기'라 부른다. 의도에서 실행으로 넘어가는 문턱의 높이를 뇌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낮추는 것이다,

p.269

세분화를 했음에도 안된다면 더 작고 간단한 과제로 쪼개라는 말이다.

실행은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멈추기 않고 돌아가는 순환 과정이어야 한다.

경영학자 에드워즈 데밍(Edwards Deming)은 품질 관리를 위해 'PDCA(Plan-Do-Check-Act)' 라는 사이클을 제안했다. 나는 이 산업적 모델을 개인의 성장에 맞춰 'PDRF(Plan-Do-Record-Feedback)'라는 개념으로 재정립했다.

이 사이클에서 기획과 실행은 앞서 다룬 설계와 진입의 단계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계획하고 실행하는 데서 멈춘다. 하지만 실행의 성패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행위가 남긴 흔적을 처리하는 방식에서 결정된다. 바로 '기록'이다. 기록되지 않은 실행은 증발한다. 인간의 기억은 불완전하고 감정에 의해 쉽게 왜곡되기 때문이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피드백이다. 피드백은 냉철한 복기다. 질문들에 답하며 다음 계획을 수정하는 과정이야말로 실행력의 핵심이다.

p.270 ~ 271

실행을 위해서는 기록이 필요하고, 그 기록을 피드백하며 다음 계획을 수정하는 것이 실행력의 핵심이라는 말이다.

거리를 좁혀놓았다고 해서 저절로 건너가지지는 않는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구간을 빠르게 돌파하는 힘, 바로 속도다.

시간을 기계적으로 보내는 사람은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단절된 삶을 살지만 메시아적 시간관을 가진 사람은 다르다. 그는 과거에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현재로 소환하고, 미래에 달성할 목표의 이미지를 현재로 당겨와 융합시킨다. 이렇게 과거와 미래가 현재라는 한 지점에 착 달라붙을 때 시간의 밀도는 높아진다.

p.273 ~ 276

시간은 누구에게나 24시간이다. 하지만 메시아적 시간관을 가진 사람은 시간의 밀도를 높여 더 많은 것을 처리할 수 있으므로 구간을 빠르게 돌파하는 힘이 생긴 것이다.

자연에도 사계절이 있듯이 하루에도 고유의 결이 있다. 시간의 물리적 가치를 이해하고 그에 맞게 나를 운용할 때 우리는 가장 나다운 성과를 낼 수 있다.

첫째, 탄생을 의미하는 '오전'은 가장 선명하고 응축된 시간이다. 밤새 휴식을 취한 뇌와 몸이 깨어나는 시간이다. 이 때는 창의적이고 중요한 일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과제를 배치해야 한다.

둘째, '오후'는 관리와 확장의 시간이다. 점심 이후 인간의 바이오 리듬은 자연스럽게 하향 곡선을 그린다. 의식이 덜 선명한 시간이다. 이때 억지로 창의적인 일을 하려 들면 효율이 떨어진다. 오후에는 미팅, 자료 조사, 이메일 처리 같은 루틴한 업무나 타인과 협력하는 일을 배치하는 것이 좋다.

셋째, '저녁'은 정리와 쉼의 시간이다. 육체적 피로감이 누적된 느린 시간이다. 이때는 무리하게 무언가를 더 하려 하기보다는 하루를 정리하며 성장에 자양분을 주는 쉼을 선택 해야 한다.

p.277 ~ 278

나는 왜 저녁에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기가 어려울까. 이때가 집중이 잘되고 가장 생산적인데, 이것도 습관이 잘못 잡힌거겠지?

하루의 리듬을 알았다면 이제는 그 안에서 구체적으로 시간을 응축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나는 이것을 '리드미컬 텐션'이라 부른다. '예열-몰입-되뇌기'라는 3박자의 리듬을 타며 몰입의 강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1단계: 예열 뇌의, 온도 높이기 자리에 앉자마자 어려운 업무나 공부를 시작하려 하면 뇌는 저항한다. 이때 3~5분 정도 '예열'이 필요하다. 어제 했던 일을 가볍게 훑어보거나, 오늘 처리할 과제의 목차를 읽으며 뇌의 RPM을 서서히 올리는 것이다.

2단계: 몰입의 단계로 진입하기 미친 지속성은 쉬지 않음이 아니라 잘 쉼에서 나온다. 나는 평소 '45분 집중, 15분 휴식'의 림듬을 철저히 지킨다. 이때 중요한 것은 쉼의 질이다. 후식 시간에 스마트폰을 켜고 유튜브 숏폼을 보는 것은 뇌를 혹사시키는 행위다. 진정한 쉼은 자극을 차단하는 것이다. 잠시 눈을 감고 있거나,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호흡을 정리하거나, 가벼운 산책을 하며 뇌를 식혀주어야 한다.

3단계: 되뇌기 독서를 마치자마자 책을 덮고 일어나는 것은 금물이다. 실행 직후 3분은 '되뇌기'의 시간이어야 한다. 방금 내가 무엇을 읽었는지, 핵심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머릿속으로 빠르게 복기하는 것이다.

p.278 ~ 280

1, 3단계는 잘 지키고 있는거 같다. 2단계 몰입을 하면 몇시간씩 하다보니 중간에 흐름을 끊고 쉬는게 잘 되지 않는다. 그래도 노력해보아야겠다.

메인 시간이 거리를 좁히는 '점프'라면, 그 사이사이를 메워주는 것은 '짬 시간'이다.

짬 시간은 앞선 실행과 다음 실행 사이가 끊어지지 않도록 붙여주는 강력한 접착제다. 가열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잠시 쉴 때, 멍하니 있지 말고 산책을 하며 프로젝트에 관한 생각을 이어가 보자. 그러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책상 앞에서는 풀리지 않던 문제가 풀리면서 퍽 하고 영감이 떠오른다. 의식은 쉬고 있지만 무의식은 계속해서 그 문제를 처리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p.281

회사에 다닐 때 산책을 하고 나면 뇌가 돌아서 집중도 잘되고 안풀리던 문제가 곧 잘 풀리곤 했다. 근데 너무 집중해서 그 생각만 하다보니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저절로 몸이 움직이는 '루틴의 힘'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저서 <구별짓기>에서 인간의 행위를 설명하며 '아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아비투스는 타인과 나를 구별 짓는 취향, 습관, 몸에 밴 태도, 즉 '제2의 본성'을 말한다. 이것은 단순히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버릇이 아니다. 살아온 환경과 시간 그리고 반복된 행위가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기억되어 만들어진 '무의식적 성향'이다.

p.285

나만의 고유한 색깔을 의미하는것 같다.

나는 루틴을 우리 일상에 리듬과 질서를 부여하는 '성스러운 의례'로 격상시킬 것을권한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은 감당하기 힘든 과업이나 두려운 상황 앞에서 항상 의례를 행했다. 고대 전사들은 목숨이 오가는 전장에 나가기 전 얼굴에 분칠을 하고 춤을 추는 의식을 치렀다. 농부들은 파종하기 전 땅을 제를 올렸다. 이것은 미신이 아니라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고 산만한 정신을 하나로 모아 비장한 실행의 상태로 진입하기 위한 고도의 심리적 장치다. 의례를 치르는 순간 두려움은 용기로 바뀌고 혼돈은 질서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제단이 필요하다. 하기 싫고, 어렵고, 두려운 일일수록 무작정 덤비면 안 된다. 나만의 의식을 치르고 비장하게 들어가야 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나느 'T.P.T(Time, Place, Task)' 설계를 활용한다. 시간, 장소, 과제라는 세 가지 좌표를 명확히 고정해 뇌의 저항값을 없애는 기술이다.

'오전 11시 30분(Time)이 되면, 사무실 옆 촬영 공간(Place)으로 이동해 오직 강의안 집필(Task)만 한다.' 이 의례는 나의 몸과 마음이 자동으로 움직이게 했다. 알람이 울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무조건 이동했다.

p.288 ~ 290

나도 T.P.T를 정해서 해보아야곘다. 오후 9시가 되면 내 방에서 책을 한시간 읽는다.

루틴이 시스템이라면 그 시스템을 삐걱거리지 않고 매끄럽게 돌리는 윤활유가 바로 습관이다. 나는 내 삶을 지탱하는 다섯 가지 습관을 통해 의도와 결과의 간극을 매일 좁혀나가고 있다.

첫째, 하루의 통제권을 쥐는 아침 정시 기상이다. 둘째, 고민의 싹을 자르는 벌떡 습관이다. 셋째, 몰입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선 정리 습관이다. 넷째, 실행의 연속성을 만드는 생각 이음과 기록이다. 다섯째, 존재의 기반을 다지는 운동 습관이다.

p.290 ~ 292

나는 희귀난치병때문에 운동을 하면 안된다. 그 외에 4가지는 나도 따라해봐야겠다. 정리가 제일 안되는데 하다보면 되겠지.

루틴과 습관을 만들기에 앞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작업이 있다. 바로 현재 나의 상태를 냉정하게 진단하는 일이다.

나는 습관 지도를 그려볼 것을 권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종이 한 장을 꺼내 삶의 영역을 건강, 관계, 성장, 일 등으로 나눈다. 그리고 각 영역에서 내가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들을 솔직하게 적어본다. 이때 중요한 것은 판단하지 않고 기록하는 것이다.

p.292 ~ 293

생각나는 습관이 없다. 추후 천천히 생각해보아야 할거 같다. 습관적으로 코를 만진다는거 정도..?

의도에서 출발해 결과라는 목적지에 닿기까지 우리 앞에는 여전히 건너야 할 긴 시간과 수많은 난관이 놓여 있다. 이 지난한 과정을 버티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루틴도 결국 머춰 서고 만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그릿(Grit)', 즉 열정적 끈기다. 많은 사람이 그릿을 단순히 '참고 견디는 인내심' 정도로오해하는데 내가 정의하는 그릿은 다르다. 그것은 막연한 버팀이 아니라 기술이 몸에 붙을 때까지 반복하는 집요한 투쟁이다.

p.295

프로그래밍 학원 다닐때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오타 없이 그날 배운 내용 모두 치기 같은 걸 했었는데, 이것도 그릿인가?

그릿을 이야기하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진실이 있다. 단순히 시간을 많이 쏟고 미련하게 버틴다고 해서 누구나 위대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1만 시간의 법칙'을 오해해서 무조건 오래 반복하면 언젠가 전문가가 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잘못된 방법으로 1만 시간을 반복하면 잘못된 버릇이 1만 시간 동안 강화 될 뿐이다.

p.299 ~ 300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방향이 잘 잡혀야 모든 노력이 의미가 있다는 의미다.

그들은 무작정 열심히 하지 않았다. 자신의 약점이 무엇인지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전략을 세워 훈련했다. 피드백을 통해 끈임없이 궤도를 수정하고 어제보다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내는 치열한 고민이 동반된 것이다. 그릿은 무조건 참고 견디는 미련한 뚝심과는 다르다. 안되는 방법을 고집하지 않고 유연하게 전략을 바꾸는 지혜이자, 매순간 깨어 있는 의식으로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는 지적 성실함이다.

그릿의 핵심은 자기 결정성과 즐거움에 있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노력은 노동이다. 하지만 내가 선택해서 하는 노력은 도전이 된다.

그릿의 선순환, 즉 '자기 결정 -> 지루한 반복(임계점 돌파) -> 기술 습득 -> 성취감과 즐거움 -> 더 강력한 열정'이다.

p.300 ~ 301

무작정 견디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피드백을 하고 성실히 나아가는 것 그것이 그릿이다.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장기 그릿'이다. 중요한 것은 앤절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th)가 말한 그릿의 본질, 즉 ';인생의 나침반'을 세우는 일이다. '나는 어떤 존재로 살고 싶은가?', '내 삶의 궁극적 가치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장기 그릿의 전제다. 나는 이것을 '나침반 과제 체계'라고 부른다. 장기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중단기 과제들을 정렬하는 것이다.

p.302

  • 나는 어떤 존재로 살고 싶은가?: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하며 돈을 벌고 사는 것
  • 내 삶의 궁극적 가치는 무엇인가?: 나의 즐거움 이런것도 대답이 되는진 모르겠지만, 보자마자 떠오른 것을 적어 보았다.

#다시 일어서는 힘, 실행가를 위한 회복탄력성

우리는 흔히 성장을 우상향하는 직선 그래프로 상상하곤한다. 노력한 만큼정비례해서 결과가 나올 것이라 믿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성장은 결코 매끄럽지 않다. 아무리 강인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도 신체적, 정서적 에너지가 바닥을 치는 저점은 반드시 찾아오게 마련이다. 이유 없는 우울감이 안개처럼 덮치고 손에 잡히던 일이 모래알처럼 빠져 나가는 무기력함에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문제는 이 저점에서의 태도다. 여기서 무너지면 그동안 땀흘려 쌓아 올린 성장의 공든 탑이 한 순간에 무너진다. 상승하던 그래프가 '0'으로, 심지어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친다. 이렇게 되면 다시 시작할 때 '1'부터가 아니라 바닥부터 다시 기어올라와야 한다. 이처럼 성장의 흐름이 끊기면 시간이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복리 효과를 누릴수 없다. 그러므로 실행가에게 필요한 회복탄력성은 단순히 기분 나쁜 일을 빨리 털어내는 능력 정도가 아니다. 그것은 의도와 결과 사이의 간극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퇴보의 시간을 견뎌내게 하고, 성장의 그래프가 꺾이지 않도록 지지해주던 단단한 안전판이다.

p.305 ~ 306

프로그래밍을 커리어를 아주 잘 쌓아가고 있었는데, 우울증과 몸의 변화때문에 모든걸 포기하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왔다. 다시 일을 할 수 없을거라 생각해서 프로그래밍도 손을 놓았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났고 다 까먹은거 같다. 근데 다시 할 수 있을거 같다는 생각이들어 다시 프로그래밍을 공부해보려한다. 바닥부터 가겠지만 이전에 잘 했었던 기억이 있으니까 괜찮을거 같다.

회복탄력성의 능력은 타고나는 것일까? 다행히도 아니다. 김주환 교수는 회복탄력성을 후천적인 노력으로 키울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절망과 무기력의 순간, 우리는 어떤 것을 남겨야 할까?

첫째, 감정의 왜곡을 바로잡는 '사실 확인의 기록'이다. 작은 실수 하나를 인생 전체의 실패로 확대해석하고 '나는 뭘 해도 안돼'라는 거짓말을 사실처럼 믿게 만든다. 이때 펜을 들어 실패했다고 느끼는 그 순간의 정황을 건조하게 적어보자

둘째, 성취의 기억을 소환하는 '작은 승리의 아카이브'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테레사 아마빌레(Teresa M. Amabile)교수는 <전진의 법칙>을 통해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은 거창한 보상이 아니라 '작은 성취의 경험'이라고 밝혔다.

셋째, 고통을 의미로 바꾸는 '재해석의 기록'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실패했다'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 실패를 통해 나는 A라는 변수를 통제하는 법을 배웠다'라고 다시 쓰는 순간, 실패는 상처가 아니라 내 인생의 소중한 아카이브가 된다.

p.308 ~ 309

나는 세 가지를 모두 생각했는데 너무 다른 분야로 우울증과 몸의 변화가 와서였을까 왜 회복탄력성이 하나도 없었지..

결국 회복탄력성은 특별한 위기 대처 능력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루틴에서 비롯된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시련을 이겨낼 힘도 생긴다.

p.310 ~ 311

희귀난치병으로 몸이 너무 아파서, 몸이 너무 힘들어서 회복탄력성이 없었나보다. 더이상 버틸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서 그랬었나 보다.

#5장. 요약

아웃풋 없는 인풋은 '지적 비만'일 뿐이다.

실행력: 의도와 결과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다리를 놓는 공학적 기술

  • 첫째, '계획'으로 간격 자체를 물리적으로 좁히는 것
    1. 계획
    2. 세분화
  • 둘째, 시간의 '밀도'를 높여 속도를 내는 것
    • 물리적 시간은 24시간으로 동일하다.
    • 메시아적 시간관으로 주관적 시간을 가져와 밀도를 높여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양을 처리하는 것이다.
  • 셋째, '루틴과 습관'으로 실행의 부하를 줄이는 것
    • 성스러운 의례로 격상 시킨다.
    • T.P.T 방식을 이용한다.
    • 습관 만들기
      • 첫째, 하루의 통제권을 쥐는 아침 정시 기상이다.
      • 둘째, 고민의 싹을 자르는 벌떡 습관이다.
      • 셋째, 몰입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선 정리 습관이다.
      • 넷째, 실행의 연속성을 만드는 생각 이음과 기록이다.
      • 다섯째, 존재의 기반을 다지는 운동 습관이다.
  • 넷째, '미친 지속성'에 대한 자기 확신을 갖는 것
    • 미친듯이 몰입해서 해결해 봤다는 경험에 대한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한다.
  • 다섯째, '회복탄력성'으로 안전망을 까는 것
    • 첫째, 감정의 왜곡을 바로잡는 '사실 확인의 기록'이다.
    • 둘째, 성취의 기억을 소환하는 '작은 승리의 아카이브'다
    • 셋째, 고통을 의미로 바꾸는 '재해석의 기록'이다.

그릿 버티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올바르게 잡고 기술이 몸에 붙을 때까지 반복하는 집요한 투쟁이다.

그릿의 선순환 '자기 결정 -> 지루한 반복(임계점 돌파) -> 기술 습득 -> 성취감과 즐거움 -> 더 강력한 열정'이다.

#에필로그: '슬렁슬렁'의 미학이 필요한 때

나는 당신이 거인이 되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이를 악물고 뛰어나가기를 원치 않는다. 오히려 나는 당신에게 슬렁슬렁의 미학을 권하고 싶다.

너무 강하게 힘을 주면 부러진다는 것.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수행은 오래갈 수 없다. 진짜 고수는 힘을 빼고 유영하듯 나아간다.

p.313 ~ 314

지금도 메모 독서법을 읽고 독서 노트를 쓰기 위해 하루종일 하고 있다. 조금 잘 쉬고 꾸준히 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인거 같다.

#전체 요약

#깨달은 것, 얻은 것

#실천 항목

#마인드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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