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신하들이 아뢰기를, "신들의 생각으로는 신은 '덕업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고, 라는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이므로 이를 나라 이름으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집니다." (중략) 여러 신하가 한마음으로 삼가 '신라 국왕'이라는 칭호를 올리옵니다."라고 하니 왕이 이에 따랐다.
@삼국사기
왕이 몸소 나라 안의 주, 군, 현을 정하였다. 실직주를 설치하고 이사부를 군주로 삼았다. 군주의 명칭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삼국사기
13년 6월에 우산국이 항복하여 해마다 토산물을 바쳤다. 우산국은 명주의 정동쪽 바다에 있는 섬으로 울릉도라고도 하였다.
@삼국사기
p.49
지증와은 국호를 '신라'로 정하고, 왕호를 마립간에서 '왕'으로 바꾸었어요. 수도와 지방의 행정 구역을 정비하고 지방관(군주)을 파견하였으며, 이사부를 보내 우산국을 정벌하였어요. 또 순장을 금지하고 우경을 장려하였어요.
p.49
iWord
신라의 왕호 변천 과정
신라의 왕호는 '거서간-차차웅-이사금-마립간-왕' 의 순으로 변하였어요. 거서간은 왕-귀인을 의미하고, 차차웅은 무당이라는 뜻이었어요. 그리고 이사금은 연장자를 뜻하는 말에서 유래되었어요. 마립간은 마리-마루 등과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우두머리라는 뜻이에요.
p.49
iWord
우산국
지금의 울룽도에 있었던 고대의 작은 나라예요.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에 의해 신라에 복속되었어요
불법을 처음으로 행하였다. (중략) 이때에 이르러 왕이 불교를 일으키려 하였으나 여러 신하들이 믿지 않고 불평을 많이 하였으므로 근심하였다. 이차돈이 아뢰기를, "바라건대 신의 목을 베어 여러 사람들의 논의를 진정시키십시오."라고 하였다. (중략) 이차돈의 목을 베자 잘린 곳에서 피가 솟구쳤는데, 그 색이 우윳빛처럼 희었다. 여러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겨 다시는 불교를 헐뜯지 않았다.
@삼국사기
p.50
신라는 법흥왕 때 삼국 중 가장 늦게 불교를 공인하였습니다. 불교가 받아들여지는 과정에서 전해지는 이야기가 이차돈의 순교예요. 이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이차돈 순교비에는 이차돈이 순교하던 순간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어요.
신라는 삼국 중 가장 늦게 성장하였지만 삼국 통일을 이룩하였어요. 6세기 신라는 지증왕, 법흥왕대를 거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으며, 진흥왕 대에 한강 유역을 차지하며 삼국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였어요. 진흥왕은 고령의 대가야를 병합하고, 동해안을 따라 함흥평야까지 진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토 팽창을 대내외에 알리기 위해 단양 신라 작성비와 4개의 순수비를 세웠어요.
p.50
iWord
당항성
지금의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곳이에요. 한반도 동남쪽에 치우쳐 있던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하게 되면서 중국과 직접 교역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고, 당항성은 중국과의 교통에서 중요한 출입구 역할을 하였어요.
p.50
iWord
단양 신라 적성비
충북 단양에 있는 신라의 비석이에요. 진흥왕 때 여러 명의 신라 장군이 전쟁에 나가 당시 고구려 지역이었던 남한강 상류의 단양 적성을 공격하여 차지하자 왕이 그 공을 치하하고, 적성 지역 백성들을 위로하기위해 세웠어요.
p.50
iWord
순수비
순수비의 '순수'는 돌 순, 사냥 수로, 원래 중국에서 황제가 사냥하면서 병사를 단련시키고 제후국을 돌아다니면서 살피는 일을 뜻하는 말이에요. 후대에는 왕이 직접 자기 영토를 돌아본다는 뜻으로 쓰였어요. 순수비는 왕이 순수한 곳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에요. 신라의 영토를 크게 확장한 진흥왕은 4개의 순수비(북한산 순수비, 창녕 척경비, 황초령 순수비, 마운령 순수비)를 세웠어요.
p.50
iWord
화랑도
신라에 있었던 청소년 수양 단체예요. 진흥왕은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정비하여 인재를 육성하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