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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4 min read 1. Projects/1. 2026년 08월 09일자 한국사능력검정시험/2. 고대/1. 삼국시대/필사/신라.md

p.49 ~ 51

#신라의 성립과 발전

#건국

  • 진한의 사로국에서 출발
  • 박혁거세가 건국(기원전 57)
  • 경주 지역의 토착 세력과 유이민 세력의 결합
  • 초기에는 박, 석, 김의 3성이 교대로 이사금(왕)에 선출됨
i인물

박혁거세 신라의 시조입니다. 사로국을 건국하고 거서간이라고 불렿ㅆ어요. 사로국은 진한 지역의 소국 가운데 하나였는데, 이 사로국이 성장하여 주변 나라를 통합하면서 신라로 발전해 갔어요. '신라'라는 국호는 지증왕 때부터 사용되었어요.

p.49

#내물 마립간(356 402)

  • 진한 정복(낙동강 유역까지 영토 확장)
  • 김씨의 독점적 왕위 세습 확립
  • '마립간(대군장)' 칭호 사용
  • 왜가 침입하자 고구려에 지원 요청
    • 광개토 태왕의 도움으로 왜 격퇴

#5세기

  • 눌지 마립간(417 ~ 458): 나-제 동맹 결성(백제 비유왕)
  • 소지 마립간(479 ~ 500): 결혼 동맹 결성(백제 동성왕)

#신라의 전성기(6세기)

#지증왕(500 514)

  • 국호: '신라'
  • 왕호: '왕' 사용
  • 지방을 주, 군으로 나누어 관리 파견
  • 이사부가 우산국(울릉도) 정복
  • 수리 사업
  • 우경 장려
  • 순장 금지(노동력 확보 목적)
  • 동시, 동시전 설치

#신라 지증왕 업적 역사서

  • 여러 신하들이 아뢰기를, "신들의 생각으로는 신은 '덕업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고, 라는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이므로 이를 나라 이름으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집니다." (중략) 여러 신하가 한마음으로 삼가 '신라 국왕'이라는 칭호를 올리옵니다."라고 하니 왕이 이에 따랐다. @삼국사기
  • 왕이 몸소 나라 안의 주, 군, 현을 정하였다. 실직주를 설치하고 이사부를 군주로 삼았다. 군주의 명칭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삼국사기
  • 13년 6월에 우산국이 항복하여 해마다 토산물을 바쳤다. 우산국은 명주의 정동쪽 바다에 있는 섬으로 울릉도라고도 하였다. @삼국사기
  • p.49

지증와은 국호를 '신라'로 정하고, 왕호를 마립간에서 '왕'으로 바꾸었어요. 수도와 지방의 행정 구역을 정비하고 지방관(군주)을 파견하였으며, 이사부를 보내 우산국을 정벌하였어요. 또 순장을 금지하고 우경을 장려하였어요.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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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왕호 변천 과정 신라의 왕호는 '거서간-차차웅-이사금-마립간-왕' 의 순으로 변하였어요. 거서간은 왕-귀인을 의미하고, 차차웅은 무당이라는 뜻이었어요. 그리고 이사금은 연장자를 뜻하는 말에서 유래되었어요. 마립간은 마리-마루 등과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우두머리라는 뜻이에요.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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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국 지금의 울룽도에 있었던 고대의 작은 나라예요.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에 의해 신라에 복속되었어요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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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 소를 이용해 밭을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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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 신라의 수도였던 서라벌(경주)에 있던 시장 동시전: 그 동시를 관리하던 관청

#법흥왕(514 540)

  • '건원' 연호 사용
  • 율령 반포(17관등제 정비)
  • 골품제 정비
  • 공복 제정
  • 상대등과 병부 설치
  • 불교 공인(이차돈 순교)
  • 금관가야 병합(금관가야의 왕 김구해가 항복, 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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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복 공적인 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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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등

  • 신라에서 **귀족 회의(화백회의)**를 이끄는 최고 책임자
  • 쉽게 말하면 귀족들 대표이자 최고 정치 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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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부

  • 신라의 군사 업무를 담당하는 관청
  • 군대 모집, 무기 관리, 군사 지휘 같은 일을 맡음

#신라 법흥왕의 체제 정비 역사서

  • 4년 여름에 처음으로 병부를 설치하였다.
  • 7년 봄 정월에 율령을 반포하고, 처음으로 모든 관리의 공복을 제정하였다. 붉은빛과 자줏빛으로 위계를 표시하였다.
  • 18년 4월에 이찬 철부를 상대등으로 삼아 나라의 일을 총괄하게 하였다. 상대등의 관직은 이때 처음으로 생겼는데, 지금의 재상과 같다.
  • 23년 처음으로 연호를 정하여 건원이라 하였다.

@삼국사기

p.50

법흥왕은 병부를 설치하였으며, 율령을 반포하고 관리의 공복을 제정하는 등 체제 정비를 위해 노력하였어요. 또한, 상대등을 설치하여 국정을 총괄하는 재상의 역할을 부여하였고, '건원'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습니다.

p.50

#신라의 불교 수용 역사서

불법을 처음으로 행하였다. (중략) 이때에 이르러 왕이 불교를 일으키려 하였으나 여러 신하들이 믿지 않고 불평을 많이 하였으므로 근심하였다. 이차돈이 아뢰기를, "바라건대 신의 목을 베어 여러 사람들의 논의를 진정시키십시오."라고 하였다. (중략) 이차돈의 목을 베자 잘린 곳에서 피가 솟구쳤는데, 그 색이 우윳빛처럼 희었다. 여러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겨 다시는 불교를 헐뜯지 않았다.

@삼국사기

p.50

신라는 법흥왕 때 삼국 중 가장 늦게 불교를 공인하였습니다. 불교가 받아들여지는 과정에서 전해지는 이야기가 이차돈의 순교예요. 이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이차돈 순교비에는 이차돈이 순교하던 순간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어요.

p.50

#진흥왕(540 576)

  • '개국'-'태창(대창)' 연호 사용
  • 화랑도를 국가적인 조직으로 개편
  • 품주(조세 관장) 설치
  • 불교 진흥(불교 교단 정비, 황룡사 건립)
  • "국사" 편찬(거칠부)
  • 백제 성왕과 연합하여 한강 유역 점령, 관산성 전투에서 승리(백제 성왕 전사)
    • 한강 유역을 모두 차지
    • 삼국 경쟁의 주도권 장악
  • 이사부를 보내 대가야 정복(562)
  • 북으로 동해안을 따라 함흥평야까지 진출
  • 당항성을 통해 중국과 교류
  • 영토확장 기념: 단양 신라 적성비, 4개의 순수비 건립 | 단양 신라 적성비

#신라의 전성기(6세기) | 신라의 전성기(6세기)

신라는 삼국 중 가장 늦게 성장하였지만 삼국 통일을 이룩하였어요. 6세기 신라는 지증왕, 법흥왕대를 거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으며, 진흥왕 대에 한강 유역을 차지하며 삼국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였어요. 진흥왕은 고령의 대가야를 병합하고, 동해안을 따라 함흥평야까지 진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토 팽창을 대내외에 알리기 위해 단양 신라 작성비와 4개의 순수비를 세웠어요.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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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항성 지금의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곳이에요. 한반도 동남쪽에 치우쳐 있던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하게 되면서 중국과 직접 교역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고, 당항성은 중국과의 교통에서 중요한 출입구 역할을 하였어요.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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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신라 적성비 충북 단양에 있는 신라의 비석이에요. 진흥왕 때 여러 명의 신라 장군이 전쟁에 나가 당시 고구려 지역이었던 남한강 상류의 단양 적성을 공격하여 차지하자 왕이 그 공을 치하하고, 적성 지역 백성들을 위로하기위해 세웠어요.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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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비 순수비의 '순수'는 돌 순, 사냥 수로, 원래 중국에서 황제가 사냥하면서 병사를 단련시키고 제후국을 돌아다니면서 살피는 일을 뜻하는 말이에요. 후대에는 왕이 직접 자기 영토를 돌아본다는 뜻으로 쓰였어요. 순수비는 왕이 순수한 곳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에요. 신라의 영토를 크게 확장한 진흥왕은 4개의 순수비(북한산 순수비, 창녕 척경비, 황초령 순수비, 마운령 순수비)를 세웠어요.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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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도 신라에 있었던 청소년 수양 단체예요. 진흥왕은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정비하여 인재를 육성하였어요.

p.50

#신라의 삼국 통일

#나당 동맹의 결성

  1. 백제 의자왕의 공격으로 위기에 빠진 신라가 김춘추를 고구려로 보내 동맹 시도 -> 실패(642)
  2. 김춘추가 당으로 건너가 나-당 동맹 결성(648)
  3. 나-당 연합군이 백제, 고구려를 공격하여 멸망시킴

#나당 전쟁

  • 당의 한반도 지배 야욕: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후 당이 웅진도독부(백제), 계림도도부(신라 금성), 안동도호부(고구려 평양) 설치
  • 고구려 부흥 운동 지원
  • 메소성 전투(675), 기벌포 전투(676)에서 당군 격퇴
  • 삼국 통일 완수(문무왕, 676)

#나당 전쟁 역사서

  • 이근행이 군사 20만 명을 이끌고 메소성에 진을 쳤다. 신라군이 (이근행의 군사를) 공격하여 패주시키고, 말 3만여 필과 그만큼의 다른 병기를 얻었다. @삼국사기
  • 사찬 시득이 수군을 거느리고 설인귀와 소부리주 기벌포에서 싸웠는데 연이어 패배하였다. [시득은] 다시 나아가 크고 작게 22번 싸워 이기고, 4천여 명의 목을 베었다. @삼국사기

p.50

당은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 이후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어요. 이에 신라는 백제 및 고구려 유민과 힘을 합쳐 당에 대항하였습니다. 신라는 매소성에서 당의 육군을, 기벌포에서 설인귀가 이끄는 당의 수군을 격파하고 삼국 통일을 완성하였어요(676).

p.50

#평가

  • 의의
    • 고구려, 백제 유민과 함께 당 축출(자주적)
    • 삼국의 문화 융합(민족 문화 발전의 토대 마련)
  • 한계
    • 외세(당) 이용
    • 대동강 이남 지역만 확보(옛 고구려 땅 대부분 상실)

#참고 자료

신라의 전성기(6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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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순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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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신라 적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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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척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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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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